“병원은 무슨 병원.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정부 제도를 받을 수 있는 노숙자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죽기 직전에 가는 게 병원이야.”
지난 17일 오전 서울역 앞. 머리가 희끗한 50대 노숙자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이어지는 사이 정부가 내놓은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 제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코로나19가 걸려도 누가 병원을 가겠어. 열이 팔팔 끓고 눈도 못 떠서 며칠을 앓아누우면 가끔 찾아오는 지원센터 직원이 신고해주겠지”라며 “어디 하나 부러지고 곪아 터져도 병원에 가지도 않아. 가도 하루 이틀 버티다 나오지. 병원에서도 받아주기 싫어하고 눈치 주고, 우리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야. 다들 그렇게 병원 뛰쳐나와서 얼마 안 있다가 쓰러지고 그래”라고 말했다.
2011년 제정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복지법)’에 따르면 의료급여를 받는 노숙인의 경우 국가에서 지정된 공공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또 법 제16조 제1항 제6호에 따른 노숙인 진료시설을 이용하려는 노숙인 등은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이나 노숙인 자활시설에 입소해야 하며 일정 기간을 거쳐 증명을 받고, 서류를 작성해야 의료급여 적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공의료기관은 감염병전담기관으로 전환됐고, 노숙인들이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잇따랐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 제도’를 내놓고 1, 2차 모든 의료기관과 일부 3차 의료기관, 재활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기관 확대를 허가했다. 해당 제도는 올해 3월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1년 더 연장된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제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말이 나온다. 같은 의료급여를 적용받는 사람이라도 노숙인에게만 진료시설 이용에 차별을 둔 점, 실제로 의료급여를 받고 있는 노숙인이 정작 20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전국 903명(서울 888명)이었던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는 이후 매년 큰 폭으로 줄었고 2021년에는 271명(서울 250명)을 기록했다. 잠재적 수급 대상자 규모 대비 실제 수급자의 비율 또한 매년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숙인이 의료급여 수급제를 받으려면 노숙 기간 3개월, 건강보험 미납 6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몇 없는 노숙인 자활・보호 시설에 가입한 상태여야만 1종 의료급여 수급자를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노숙인들이 많지 않다. 대다수가 아파도 병원을 갈 엄두를 못 낸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코로나19 의료 접근성을 넓힌다는 취지에서 해당 제도를 만들고, 기관을 확대한다는데 노숙자들이 ‘지정된 병원’ 진료에서, ‘의료 수급권자’ 만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해당 제도는 요양병원도 포함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 오래 전부터 노숙인이 이용 가능한 요양병원은 단 2곳뿐이다. 2014년 요양병원에서 노숙인을 꾀어 정부 돈을 빼간 사건 이후 노숙자가 요양병원을 갈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을 확대했다고 해도 실상 민간병원과의 연계가 부족해 결국에는 기존 행려 전담진료 병원으로 지정돼 있던 국공립병원에 노숙자를 밀어넣고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복지부는 고시 제정 이후 전국 노숙인 진료시설을 기존 291개에서 7만4614개로 확대했다. 다만 기존 291개 병원이 아닌 한시적으로 지정된 민간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노숙인 시설, 지원센터 등에서 직접 진료 의뢰를 해야 한다. 시민단체에 의하면 시설 등에서 의뢰를 하더라도 민간 의료기관에서 노숙인 진료를 달가워하지 않아 결국 기존 지정 병원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 상임활동가는 “시설에서 민간병원과 연계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병원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갈 수 있는 병원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면서 “민간병원은 노숙자라는 이유로 불편해 한다. 정부에서 100% 지원되는 의료급여 비용은 본인부담을 제외해 건강보험으로 지원되는 금액보다 적다. 그렇다보니 굳이 노숙인을 받을 이유를 못 느끼는 것이다. 병원 속에서도 차별을 받는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노숙인 등’이 아플 때 참게 하고, 참아서 병을 키우도록 만드는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는 것이 복지부가 할 일이다. 11년간의 낙인효과를 체화하고 있는 의료기관과 지자체를 바로잡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복지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라며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로 그 길의 첫 번째 관문이다. 복잡한 선정 기준과 불필요한 고시는 곧잘 만들면서 시행규칙 한 줄 바꾸는 일을 11년째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팀장도 “노숙인이 의료급여를 받더라도 병원에서 차별을 받거나 접근조차 못하는 사례가 있다. 문서화되지 않는 암묵적 차별 속에서 노숙인들은 스스로 병원을 꺼리게 된다”며 “이번 제도의 1년 연장은 그저 문제 회피일 뿐이다. 제도를 폐지하고 보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