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둘리’가 밉다는 사람에게 [쿠키인터뷰]

이제는 ‘둘리’가 밉다는 사람에게 [쿠키인터뷰]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 27년만에 재개봉’
“길동에게 이입하더라도 둘리를 사랑했던 동심 잊지 않길”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하려면 정부 지원 필요해”

기사승인 2023-06-01 13:30:55
김수정 감독이 둘리를 미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하하, 둘리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우리 다 그러고 컸잖아요.”

펜을 잡고 15초가 지나자 베레모를 쓰고 스케치북을 든 둘리가 나타났다.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가진, 어딘가 둘리와 꼭 닮은 사람.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 원작자 김수정이다. 지난 1996년 얼음별로 대모험을 떠났던 둘리가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지난 24일 극장에 돌아왔다. 27년 후 세상을 만난 둘리는 어떨까. 쿠키뉴스가 29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둘리 아빠’ 김수정 감독을 만났다. 

길동을 괴롭히던 둘리는 올해로 40세가 됐다. 둘리를 응원하던 어린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둘리만 한 아이들을 키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만화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이제는 길동이 불쌍하다고 한다. “둘리가 아니라 길동을 이해하게 되면 어른”이라는 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달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부모의 무게, 삶의 애환을 이해하게 된 걸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니 사실 둘리가 완전 민폐 캐릭터고, 고길동이 성인군자인 만화였다.”고 말하지만 김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김수정 감독이 둘리를 그리고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둘리가 못된 캐릭터였던 것이 아니에요. 이야기는 40년 전과 같아요. 그때 둘리에게 열광했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길동씨한테 마음이 기우는 것뿐이죠. 이젠 나이도 상황도 길동 씨와 비슷하니까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변한 거예요. 사람이 자라면서 변화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때 우리가 왜 한마음으로 둘리를 응원했었는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개인 영역을 존중받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남들에게 민폐 끼치는’ 어린이들에게 각박한 세상이 됐다. 식당, 버스 같은 공공장소에서 조금만 크게 떠들거나 뛰면 따가운 눈초리가 쏟아진다.

영화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워터홀컴퍼니

작중 둘리도 민폐를 끼치는 여느 아이들과 같다. 어른 말도 안 듣고 예의도 없다. 실수로 주방 접시를 깨고, 청소기로 길동의 머리카락을 빨아들이면서 골탕 먹인다. 하지만 어른 길동이 무서워 도망가기도, 그에게 사랑받고 싶어하기도 한다. “아이들 세상에선 그게 당연해요. 어른 말도 잘 안 듣고, 말썽 피우는 것이 일상이죠. 저도 그렇게 컸어요.”

둘리뿐 아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완벽하지 않다. 서커스단에서 탈출한 또치, 부모님과 떨어진 희동이, 가수가 되고 싶지만 노래는 잘 못하는 마이콜까지. 결핍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시대가 지나도 사람들은 여전히 불완전해요. 어른도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흠집 하나 없는 사람은 없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꿈을 잃지 않고 도전하면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많이들 공감해 주신 것 같아요. 그게 둘리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 아닐까요.”

김수정 감독이 리마스터링 작업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차종관 기자

리마스터링 작업을 할 때, 그는 화려한 기술을 적용하거나 색 보정을 많이 하지 않았다. 최대한 원본을 살렸다. 오랜만에 둘리를 만날 관객들이 그 시절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추억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도 오랜만에 극장에서 둘리를 마주했다. “어린 친구들이 많이 보러 왔더라고요. 아마 부모님을 따라왔겠죠. 조금 걱정했어요. 옛날 영화라서 유머 코드가 안 맞을 텐데. 어린 친구들도 재밌어할까.”

괜한 걱정이었다. 27년 전 우리처럼 아이들도 같은 장면에서 웃었다. 악당 바요킹을 물리치는 둘리와 친구들을 한 마음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김 감독의 말처럼, 이야기는 그대로 있었다. 둘리를 사랑할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욕심이 생겼어요. 즐거워하는 어린 관객들을 보니 애니메이션을 다시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이 시대에 사는 어린이들을 위한 멋진 이야기를 보여줘야죠.”

김수정 감독은 내년 쯤 둘리 후속작을 출판할 예정이다.   사진=차종관 기자

그는 내년 쯤 다음 만화를 출판할 예정이다.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작비와 투자사 문제가 있어요. 한 번 제작하려면 최소 50억에서 70억이 들거든요. 일본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 국내 만화영화 산업을 확장하려면 정부에서 만화영화에 지원을 과감하게 해 줘야 해요.”

시장이 작은 탓에 만화가를 꿈꾸는 청년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넘어가 자리를 잡는다. 급여 등 처우가 좋지 않고,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되지 않아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만화가로서 전문성을 기르려면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노하우를 축적해야 해요. 한국에선 작품 제작 텀이 길다보니 한 작품이 끝나면 함께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합니다. 배우는 입장에서 기술을 쌓기 어려워요. 더 많은 사람들이 국내에서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심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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