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혼잡도 완화 방안으로 내년 1월부터 서울지하철 ‘출퇴근길 4·7호선 입석 칸 운행’을 예고했지만, 사전 안전성 실험 등을 거치지 않은 대책으로 오히려 안전 사고를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내년 1월부터 4호선과 7호선 출·퇴근길 1편성 중 두 칸을 입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객실 의자를 제거하고 칸당 12.6㎡ 공간을 확보해 혼잡률을 40%까지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대책이 결과적으로 혼잡률이 극에 달하는 4·7호선의 승객 밀도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음에도 공사가 별도의 실험이나 사고 예측 모델을 가정해 보지 않은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다른 공학 분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 충분하겠지만, 안전과 직결된 문제는 사람을 직접 태워서 상황을 예측해 보는 피지컬 시뮬레이션을 꼭 해 봐야 한다”며, “만약 컴퓨터 시뮬레이션조차 돌려보지 않았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와 김포골드라인 압사 위험 등으로 불안감이 커진 시민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 교수는 입석 칸 운행 시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는 지하철이 꽉 차더라도 좌석 앞 공간이 있으니 승객들이 숨이라도 쉴 수 있었던 것”며 “그 공간을 다 빼고 입석으로 채우면 호흡곤란이나 시민들이 넘어지는 등의 위험한 상황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단순히 의자를 뺀 공간에 사람을 넣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정책”이라며 “공사의 최고 가치가 70·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해도 (변수가 많아) 과학적으로 들어맞는다고 하긴 어렵다”며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려가 계속되는 것이)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혼잡도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고, 입석 열차 운영은 그중 일부”라며 “시범운영 이후 여러 민원 사항이나 부족한 점 등을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공사의 대책으로 지하철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탑승 대기 수요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7일 기자가 직접 탑승한 퇴근길 4호선 충무로역 상행선은 오후 다섯 시부터 붐볐다. 한 칸당 열댓 명의 승객이 줄지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내부엔 이미 사람이 꽉 차 있었다. 기다리던 승객 중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너덧 명뿐이었고, 발 디딜 틈조차 사라지자 열차는 문을 닫고 출발했다.
우이신설선 환승이 가능한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도 상황이 비슷했다. 지난 6월부터 역에서 안전 도우미를 하고 있다는 김모(68)씨는 “(사람이 많으니) 더 타지 말라고 제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특히 바쁜 출근 시간에는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최대한 몸을 욱여 넣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결국 혼잡도는 비슷하거나 더 심해질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지하철은 대기 인원이 항상 넘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파의 틈에 최대한 들어가려 한다”며, “지하철 이용 수요를 줄이지 않는 이상 혼잡률을 관리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엔 공간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빈 공간에 사람이 가득 차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람들은 입석으로 열차를 이용할 때 혼잡도를 더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14년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시 지하철 혼잡비용 산정과 정책 활용’ 보고서에는 영국 등 해외에서 지난 20년간 수행된 지하철 혼잡가치 평가의 내용이 담겼다.
런던 지하철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승객은 좌석에 착석한 경우보다 입석으로 이용하는 경우 2배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혼잡도 100%(차량 탑승 인원 160명)인 경우 착석 승객은 1.3%, 입석 승객은 1.7%~2.0%의 가중치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혼잡도에서도 입석의 경우 더 큰 피로를 느낀다는 것으로, 공사의 이번 대책이 오히려 승객 불편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입석 운행 등은 서울교통공사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사항이지만, 내부적으로 시민들의 불만 사항을 잘 고려해 달라는 의사를 공사에 전달했다”며 “향후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거나 시민들의 안전이 위험해질 경우 안전 관리 강화 및 개선점 등을 공식적으로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