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희망 증원 규모 수요 조사 결과를 ‘졸속·부실·불공정 조사’로 규정했다.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된 의대 정원 정책을 수립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증원을 강행하면 지난 2020년보다 더 큰 규모의 의료계 총파업으로 맞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21일 회관 대강당에서 보건복지부가 수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여론몰이용 졸속 의대 정원 조사를 강력 규탄한다”고 전했다.
복지부가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학년도 증원 수요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이다. 2030학년도까진 최소 2738명에서 최대 3953명을 추가 증원할 여력이 있다고 답했다. 현재 의대 정원이 3058명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조사 결과대로라면 2025학년도엔 의대 정원이 5000명대로 늘어나는 셈이다. 이후 2030년까지 매년 100~200명씩 늘린다면 현재 정원의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의협은 즉각 반발했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국가의 의대 정원 정책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의료정책이자 대한민국의 미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교육정책”이라며 “증원 여부에 대한 결정과 규모에 대한 분석엔 반드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사 결과 자체를 부정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정치인, 대학과 병원이 원하는 만큼의 수요가 담겼을 뿐 그 자체만으론 과학적·객관적 근거가 될 수 없단 것이다. 이 회장은 “의학 교육 현실엔 눈을 감고, 의대생 의견엔 귀를 닫고, 협상 당사자인 의협을 배제한 편파적 수요 조사와 독단적 결과 발표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며 “정부의 일방 강행 시 의료계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며 2020년보다 더욱 강력한 의료계의 강경투쟁에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2020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자 의협을 비롯한 의사단체가 집단휴진(파업)에 나선 바 있다.
적정 의대 정원에 대한 분석은 의사 인력 수급과 의료 서비스 질에 미치는 영향, 인구구조 변화, 의료기술 발전, 의료제도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회장은 “졸속으로 진행된 수요 조사는 입시 수혜를 바라는 대학 총장들과 이를 반대하는 의대 학장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했고,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숫자 발표로 사회에 큰 혼란을 초래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 정책이 애당초 무엇 때문에 시작됐는지 스스로 다시 돌아보라”고 촉구했다.
이날 오전에 있었던 ‘국민 10명 중 8명이 의대 정원 확대에 동의한다’는 보건의료노조의 여론조사 결과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정책 실패의 원인을 의대 정원으로 보고 증원만 이뤄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호도했기 때문에 국민 인식이 치우치게 됐단 분석이다. 서정성 의협 총무이사는 “외국에 한 번이라도 나가 본 사람이라면 국내 의료접근성이 얼마나 좋은지 안다”며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문제 해결책은 의대 정원 확대만이 답인 것처럼 발표해 국민들이 그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번 수요 조사로 인해 의·정 간 신뢰관계가 깨져 향후 의료현안협의체 회의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다음 회의는 오는 22일 오후에 예정돼 있다. 서 총무이사는 “이번 회의에선 저수가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려고 했다”며 “오늘 저녁 논의를 통해 내일 회의를 이어갈 수 있을지 결정될 것 같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