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형 랩어카운트와 특정금전신탁은 증권사가 고객과의 1대 1 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금융 상품이다. 다수의 고객 자산을 집합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개별 고객의 투자 목적과 자금 수요를 감안한 단독 운용이 가능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법인 고객은 단기 여유자금을 굴리기 위한 운용수단으로 선호해왔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채권시장이 위축되고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법인 고객들의 환매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일부 증권사들은 법인 등 일부 고객에만 투자손실을 보전해줬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금감원은 수탁고와 증감 추이, 시장 정보 등을 고려해 9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집중 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 A증권사는 지난해 7월 이후 다른 증권사와 6000여회의 연계·교체 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계좌의 CP(기업어음)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했다. 이렇게 고객 에게 전가된 손실액은 약 5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랩·신탁 운용 시에는 특정 투자자의 이익을 반하면서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해선 안 된다.
또다른 증권사는 동일 투자자 계좌간 자전 거래를 한 정황도 포착됐다. B증권사는 고객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동일 고객의 1번 랩 계좌의 CP를 2번 랩 계좌에 시가보다 2억원 높은 가격으로 매도해 1번 랩 계좌의 목표 수익률을 달성시켰다.
이에 금감원은 증권사 고유자산으로 손실보전 행위가 자본시장법상 ‘사후이익제공’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55조에서는 투자자에게 일정한 이익을 사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금감원은 “시장 금리와 괴리되는 가격으로 이뤄지는 이상거래 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내부통제가 필요하다”며 “환매 시 원금 및 수익률을 보장하는 잘못된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서는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업계가 협의해 객관적인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 등을 통해 환매가 이뤄질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