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선고 결과가 공개된 이후 SK주가가 큰 폭의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지만 2심 결과를 두고 지배구조 문제가 주가 상승 모멘템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투자업계에서는 당분간 SK 주가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높은 가운데 SK텔레콤 등 계열사 주가 상승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1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 주가는 지난달 29일 14만4700원(종가)에서 전날 18만1400원으로 25.36% 급등했다. 같은 기간 우선주인 SK우도 13만6200원에서 17만3000원으로 27.01% 치솟았다. 단기간에 주가가 크게 요동친 셈이다.
SK와 SK 우선주의 주가 상승세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 여파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도 재산 분할 대상으로 인정하면서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금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투자자들은 이같은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을 주가 상승 모멘텀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가 최 회장의 주식을 ‘재산 분할’ 대상이라고 결론지은 만큼, 대규모 현금 마련을 위해 SK 및 계열사의 현금 배당이 확대될 수 있단 기대감이 형성돼서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계열사 지분의 매각 가능성을 예단하는 이들도 있다.
천문학적인 재산분할금 마련 시나리오
대법원에서 항소심이 확정되는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면, 최 회장은 천문학적인 재산분할금을 마련해야 한다. 최 회장은 대부분의 자산을 SK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SK 지분(17.73%, 1297만5472주)으로 보유한 상황. 최 회장의 SK 지분을 전날 종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조3537억원에 달한다. 최 회장은 SK 지분 외에 비상장사인 SK실트론 주식 29.4%, SK케미칼 우선주 3.21%, SK디스커버리 우선주 3.11% 등을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이 보유지분을 바탕으로 배당을 받아 재산분할금을 마련할 가능성과 달리 SK지분 매각 카드는 최소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분을 매각할 경우 그룹 의결권과 그룹 내 입지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업계에서는 재산분할금 마련 방안으로 SK 지분 활용 가능성보다 배당과 함께 SK실트론 지분 활용, SK 주식담보대출 등을 거론하고 있다.
우선 SK실트론 지분 활용 방안에 무게가 쏠린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은 29.4%로 나머지는 SK에서 51%를 보유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가치를 7500억원으로 봤다. SK실트론은 SK그룹 내 반도체 밸류체인 역할을 맞고 있어 ‘알짜 기업’으로 평가받는 만큼, 최 회장 측 지분이 시장에 나올 경우 가격은 더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매각을 위해선 SK 지분 4.33%에 걸린 질권 설정을 먼저 해제해야 한다. 질권 설정이란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주식 등의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최 회장이 SK실트론 인수 당시 SK주식 일부를 담보로 특수목적법인(SPC)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체결해 지분을 확보한 영향이다. 해당 질권 설정 만기는 오는 2027년 8월이다. 만기 이전에 질권 설정을 해결하기 위해선 SPC에 현금이나 담보로 잡힌 SK 지분을 줘야 한다.
SK 지분을 활용한 주식담보대출도 하나의 방안으로 꼽힌다. 이를 위해선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성향 확대 등으로 SK 주가를 적극 부양해야 한다. 주가가 높아질 수록 대출받을 수 있는 한도가 늘어나서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은 2심이 선고되기까지 6~8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향후 대법원 선고까지도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김장원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대법원의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SK는 불확실성과 큰 변동성이 주가를 지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권가 “지배구조 이슈 부각은 계열사 주가 상승 유발”
증권가에서는 이번 사태에 따라 SK그룹 계열사들의 주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대표적으로 SK텔레콤이 부각된다. 김홍식 하나증권 연구원은 “SK그룹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다시 대두되는 양상”이라며 “SK텔레콤의 높은 배당금이 유지됨과 동시에 사실상 SK, SK텔레콤 주가가 올라야 유리한 구조라 주가 상승 기대감은 높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하나증권은 배당금 지불 여력이 높은 SK텔레콤이 배당 증대에 나서며 우량 자회사들의 배당이 그룹 총수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낙관적인 상황을 가정하면 지난해 주주이익환원에 연간 1조원을 투입했던 SK텔레콤의 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자사주 소각보다 배당이 재원 마련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증권은 SK와 SK C&C가 합병하고, SK텔레콤이 인적 분할한 후 SK와 SK스퀘어가 합병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이 과정에서 SK가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하고, 세금 이슈가 없다면 옵션으로 SK가 SK텔레콤 주식을 SK스퀘어에 주식 현물 출자한 이후 공개 매수를 통해 SK스퀘어 지분 확대에 나설 수 있단 얘기다.
김 연구원은 “SK스퀘어가 배당을 지급하지 못함에 따라 그룹 총수가 하이닉스 배당금을 받을 방법이 필요하다”며 “설사 차후에 SK스퀘어가 배당금을 지급한다고 해도 이중과세에 대한 부담이 크며, 세금 문제만 없다면 SK의 SKT 주식 현물 출자 후 SK스퀘어 공개 매수 방안이 그룹 총수의 SK 보유 지분율 하락 최소화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SK그룹 지배구조 개편 스토리는 SK텔레콤 주주에게 장·단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SK텔레콤 배당금은 당장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영향에 기인한다”고 덧붙였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