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우유보다 싸잖아요. 넒은 곳에서 방목한 소젖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요즘 자주 사먹어요.”
10일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박미진(44) 씨는 최근 물가가 오르며 수입멸균우유를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아이에게도 생우유보다 멸균우유가 좋다는 말을 들었고, 가격도 1리터(L)당 1000원대로 저렴해 물가가 올랐음에도 구매할 때 부담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멸균우유는 130~150도에 0.5~5초 가열해 무균으로 무균충전팩에 충전하는 방식으로 제조한 우유다. 일반적으로 유통기한이 긴 것이 특징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농업전망 2024’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멸균우유 수입량은 전년 대비 18.9% 증가한 3만7000톤으로 집계됐다. 멸균우유는 보관이 용이하고 국산 우유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원유 가격이 농가 생산비와 음용유 사용량 등을 반영해 리터당 0~26원 인상될 가능성이 전망되며 유통가에서 수입 멸균우유 확보를 늘리고 있어 수입 멸균우유 소비층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멸균우유에는 ‘등급’표시가 없어 신선도나 품질을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생산 우유의 경우 축산물 위생관리법 ‘원유의 위생등급기준’에 따라 ml당 세균수와 체세포수로 등급이 표시된다. ml당 세균수 3만 미만~50만 초과를 기준으로 위생등급 ‘1급A~4급’으로 분류된다. 젖소의 건강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인 체세포수도 ml당 20만 미만~75만 초과로 구분해 1~5급까지 나뉜다.
국내 우유 시장 점유율 절반을 차지하는 서울우유의 경우 98~99%는 1급A, 1%정도 1급B로 1급 우유만 유통하고 있다. 반면 수입 멸균우유는 등급 없이 ‘원유100%’ 등만 쓰여 있다. 실제 취재진이 마트에서 확인한 수입 멸균우유의 경우 폴란드산 ‘믈레코비타 3.5% 멸균우유 1L’와 ‘갓밀크 1L’는 우유100%로 표기돼 있었으며 독일산 ‘올덴버거 멸균우유 1L’는 원유 100%로 표기돼 있었다.
업계에서는 멸균이라 하더라도 수입되는 제품의 경우 제조 후 시간이 경과된 제품이기 때문에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가 발행한 ‘2023 수입 유제품 유통실태 및 안전성 품질 검증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멸균유의 이론적 유통기한이 길다고 하더라도, 원료유(시유)의 품질이 낮거나, 저장조건이 열악하거나, 유통기한 경과가 오래된 제품의 경우 품질 저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외국의 경우 원유등급제도가 없거나 원유등급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국내 유통되는 수입 멸균우유는 제조 후 최소 3~8개월 경과제품이 유통·판매되고 있어 멸균우유의 품질 및 저장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국산 멸균 우유는 유통기한을 늘려도 3개월로 설정하는 반면, 수입 멸균우유는 유통기한을 1년으로 두고 있으며 국내에 들어왔을 때는 최소 3개월 넘은 제품들이 대다수”라며 “멸균우유도 3개월이 지나면 유지방이 분리되는 등 변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산 멸균유는 매년 상·하반기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원유실적검사를 진행해 체세포수와 부적합률을 검사하고 공개한다”며 “수입 멸균우유의 경우 원유의 등급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방목을 했다는 이미지와도 다르게 개체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국가별로 우유의 등급 체계는 있지만 제품에 표기는 하지 않는다. 국내에 들어올 때도 해외 기준이 적용돼 등급을 따로 구분하지는 않는다”며 “국내의 경우도 유업체별로 등급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며 수입 멸균우유는 현행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등급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입우유 표기 등을 관할하는 식약처도 표시기준에 따라 적합한 경우 유통에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 고시로 정하고 있는 ‘식품등의 표시기준’에 등급을 반드시 표시해야 된다는 의무 조항은 없다”며 “등급이 표시돼 있지 않다고 해서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수입멸균우유 제품도 표시 기준에 맞기 때문에 수입·유통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