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한시적으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상 선물 가격 범위가 완화되면서 유통업계가 활기를 띄고 있다. 백화점·대형마트들은 고객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프리미엄 선물세트 공급을 대폭 늘리면서 매출 효과도 보고 있다.
1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정부가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함에 따라 설이나 추석 기간 농수산물·가공품 선물 가격 상한이 기존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됐다. 올해 추석(17일) 기준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2일까지가 완화된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예외 기간에 해당한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사를 비롯해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추석 선물 상품군을 가성비부터 프리미엄까지 다양하게 내놨다. 특히 육류 등 축산물은 고급 부위 함량을 높이는 방식으로 선물세트 가격대를 확장했다.
이는 업계가 추석 기간 프리미엄 상품 판매량을 최대한 끌어올려 소비 진작 효과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또 기본적인 물가 인상에 따라 정육과 청과, 수산, 건강식품 등 품목의 평균 가격대가 오른 영향도 있다.
실제 매출 상승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신세계백화점의 식품 선물세트 매출은 직전 열흘 대비 800% 급증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30만원대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었으며, 같은 기간 SSG닷컴에서도 20만원대 과일 선물세트가 226% 증가했다.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 매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지난해의 경우 워낙 폭염과 병충해 같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가격대가 높았지만 올해는 기후 영향을 덜 받았다”며 “고객의 60~70% 이상이 20만원대 제품을 구매한다. 선물세트 할인율은 지난해와 비슷해 별반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소비 심리가 위축됐지만 국민 대다수는 추석 선물세트 구매에 지난해보다 지출을 늘릴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전국 20세 이상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추석 선물 구매의향’을 조사한 결과 56.2%가 “전년도와 비슷한 구매금액을 지출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가운데 29.1%는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 개정이 추석 선물 소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긍정적 영향(29.2%)’이 ‘부정적 영향(16.7%)’보다 높았다.
그러나 김영란법의 순기능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일각에선 김영란법 개정에 따른 가격 한도 상향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직자 부패 척결이라는 명분으로 도입된 법이 명절 소비 진작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어서다.
뿐만 아니라 법 규정도 자주 바뀌며 혼선을 주고 있다. 김영란법 제정 당시 공직자 등이 받을 수 있는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은 10만원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시행령이 개정되며 15만원으로 높아졌다. 이에 명절 기간 받을 수 있는 농축수산물 선물 가액도 종전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상향됐다.
이은미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김영란법은 당초 공직자들의 접대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물가 대책으로 볼 수 없다”면서 “일시적인 경제적 효과를 볼 순 있지만 그런 효과를 바라고자 가격 제한을 푸는 건 제도 자체를 폄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수 진작이 경기 부양책은 아니기에 소비 활성화를 위한 접근은 근본적으로 맞지 않다”며 “제도 도입 취지가 규제를 푸는 명분이 될 순 없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