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독대가 불발됐다. 한 대표 측에서 독대를 요청했다는 보도에 대통령실이 불쾌감을 표하면서다. 당정 간 불신이 깊어지면서, 정국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출구가 좁아진 것은 물론 ‘한동훈 리더십’이 시험대에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1시간30분가량 만찬 회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한 대표는 의정 갈등·김건희 여사 리스크 등 현안 해결을 위해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지만, 대통령실은 “만찬과 별도 논의할 사안”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언론 보도를 통해 사전 공개된 데 대한 불쾌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독대 요청 보도에 대해 “독대가 사전에 공개되는 게 어디 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독대 불발의 원인을 사전 노출로 지목한 대통령실 관계자의 전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친윤(친윤석열)계는 한 대표의 독대 요청이 공개된 것을 두고 비판에 나섰다. 윤 대통령의 체코 원전순방 성과가 ‘독대 이슈’로 묻혀버리는 등, 당정 협력으로 정책 성과를 내야할 시점에 대립 구도만 부각되는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독대 요청이 사전에 공개가 되면서 일종의 불편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며 “만약 신뢰하는 입장이 됐다면 굳이 언론에 나올 필요 없이 독대가 진행됐을 텐데, 언론에 공개되는 것 자체가 뭔가 신뢰의 정도가 낮아진 것(아닌가)”라고 말했다. 김기현 의원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최근 당대표가 대통령과의 독대 요청을 했다는 사실이 사전 유출돼 주요 뉴스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납득이 잘 되질 않는다”라며 “차기 대권을 위한 내부 분열은 용인될 수 없는 때”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과 친한(친한동훈)계는 반발에 나섰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당 대표가 대통령 독대 요청을 한 게 보도되면 안 되는 사실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그게 특별히 흠집 내기나 모욕주기로 느껴지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 역시 전날 언론 공지를 통해 “한동훈 지도부는 독대 요청을 의도적으로 사전 노출한 바 없었음을 재차 확인드린다”고 밝혔다.
양측의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이날 만찬에서 허심탄회한 논의가 이뤄질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지도부는 지난달 30일로 예정된 만찬을 추석 이후로 연기한 바 있다. 당시 한 대표가 대통령실과 사전 협의 없이 ‘2026년 의대 증원 유예안’을 제시한 게 만찬 연기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여당 연찬회에도 불참했다. 한 대표는 연찬회에서 정부와 대통령실이 진행한 ‘의료개혁’ 보고 때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은 행사장 등에서도 대화 없이 악수만 나누는 등 서먹서먹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만남이 ‘맹탕 만찬’에 그칠 경우, 한 대표 한계론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대표는 취임 두 달간 현안 대응에 주력했지만 당초 전당대회 과정에서 약속했던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과 의정갈등 돌파구 등에선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 등 용산발 악재가 이어지면서 정치적 상황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번 만찬이 빈손 회동에 그칠 경우, 국정운영의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기대하기 난망하다“라며 “한 대표 리더십도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한 대표의 미숙한 정치력이 문제”라면서 “당정 관계 재정립과 당정 단일대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혼란을 집권당 대표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