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무죄’ 속 전세사기 첫 유죄판결…“정의실현 뜻 깊어”

‘감형‧무죄’ 속 전세사기 첫 유죄판결…“정의실현 뜻 깊어”

인천 미추홀구 피해자 4명 사망에도 감형 잇따라

기사승인 2024-11-22 06:00:08
전세사기 피해자 제공. 

대규모 전세사기 발생 2년 만에 전세사기범에 대해 대법원의 첫 유죄판결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전세사기에 대한 형량 강화를 촉구했다.

22일 부산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이하 전세사기 대책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최씨는 2020년~2022년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부산 수영구 오피스텔 등 9개 건물을 사들였다. 이후 229명에게 전세보증금 180억원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구형한 13년을 상회하는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형법상 사기죄는 징역 10년까지 선고 가능한데 여러 죄를 합쳐서 고려한 경합범 가중까지 활용한 법정 최고형이다. 최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1심 판결에 불복했으나 2심과 대법원 모두 원심을 유지한 것이다. 

1심 법원은 “부동산 경기나 이자율 등 경제 사정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동할 수 있어 임대인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환영 입장을 밝혔다. 전세사기 대책위는 법원이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법 정의를 실현한 것에 대해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이들은 “최씨 외에도 함께 공모한 이들과 또 다른 전세사기범들은 여전히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열릴 판결에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피해자 두 번 울리는 솜방망이 처벌

피해자들은 전세사기범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놓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것. 인천 미추홀구, 경기도 일대에서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2700채를 소유한 ‘건축왕’ A씨는 항소심 재판에서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원심 징역 15년에서 8년이 감형된 형이다. A씨 일당은 전체 혐의 액수 536억원(피해가구 665채)에 피해자 4명이 잇따라 숨졌지만 감형받았다. 재판부는 먼저 기소된 148억원대에 대한 혐의를 다루면서 68억원만 피해액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 공범으로 기소된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도권 일대에서 144억원 규모의 전세사기를 저지른 일당도 2심에서 감형받았다.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최모씨와 컨설팅업자 정모씨는 1심에서 각각 징역 12년, 3년을 선고받았다. 최씨는 2019년 6월∼2022년 4월 서울·인천·경기 일대에서 다세대주택을 무자본 갭투기 방식으로 사들인 뒤 임차인 70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약 144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그러나 2심에서 최씨는 징역 10년, 정씨는 3년으로 감형 받았다. 

전세사기 비대위는 전세사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는 지난 11일부터 A씨의 엄벌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강민석 인천 미추홀구대책위 대표는 “2만3000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판결”이라며 “전국 전세사기 사기꾼들에게 법원이 용서해 준다는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A씨 일당은 단 한 번도 진실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며 “사법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는 전세사기범에 대한 낮은 처벌 수위가 피해자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팀 부장은 “사법부가 국민들의 법관점과 괴리된 판결을 내리며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에 추가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세보증금은 세입자들의 전재산이고 대출까지 받은 이들은 하루아침에 빚쟁이가 되고 있다”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형량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처벌 구조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엄정숙 법무법인 법도 변호사는 “전세사기는 고의성을 따지기가 어렵다. 투자인지 투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판결에서 중형으로 가기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부장은 “전세사기 진짜 범인은 건축주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이 바지사장, 집주인들을 내세워 집을 비싸게 넘겨 이득을 취한 뒤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처벌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세사기 체계에서는 바지 집주인들에 대한 처벌과 판결에 집중돼 아쉬움이 있다”고 꼬집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조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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