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였던 영풍그룹과 고려아연이 홀로서기에 돌입한 가운데,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영풍의 손을 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에 나섰다.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기업 인수 후 가치를 늘려 이를 다시 매각해 수익을 실현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 국가기간산업을 영위하는 기업 간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연말, 글로벌 비철금속 리더인 두 기업의 ‘송구영신’을 위해 과거의 교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
서울 종로구 롯데카드 본사 사옥 앞에선 2주째 노조원들의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임금 협상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이나, 깊이 들어가 보면 경영진에 대한 임직원들의 뿌리깊은 불신과 불평등한 처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롯데카드는 5년 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곳으로 최근 실적 부진과 동시에 노사 갈등을 겪으면서, 과거 MBK가 인수했던 딜라이브, BHC, 홈플러스 등 여러 곳에서 제기된 바 있는 고용 불안정 등 문제점도 재차 지적되고 있다.
특히 MBK 체제에서 연임하고 있는 경영진과 롯데카드 노동조합의 갈등은 사측이 업황 악화에 따른 긴축 경영 등을 내세우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노조 측은 임원-임직원 급여 동향 등을 토대로 경영진이 실적 악화 책임을 외면한 채, 직원들에게만 짐을 떠안기려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카드는 지난 2019년 MBK에 인수된 이후 임원 수와 임원 1인 평균 급여가 20% 이상 증가해 왔다. 지난해 조좌진 대표의 급여는 10억4200만원으로 업계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반면, 직원 평균 급여는 9400만원으로 8개 카드사 중 유일하게 1억원 미만이다. 같은 기간 직원 1명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2억3523억원(3위)으로, 직원생산성이 최상위권에 속한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MBK의 경영 능력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MBK는 롯데카드 인수 3년 만인 지난 2022년 첫 매각을 시도했지만 높은 몸값 탓에 입찰이 불발됐다. 이후 재매각 시기를 고심하는 동안 롯데카드의 기업가치, 실적 등은 오히려 뒷걸음했다.
올 상반기 롯데카드의 순이익은 6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060억원) 대비 79.5% 감소했다. 지난해 상반기 자회사였던 로카모빌리티를 매각한 데 따른 일회성 이익 효과를 제외해도 순이익이 41.7% 줄었다. MBK 인수 이후 몇 년간 개선되는가 싶던 연체 채권비율도 올 상반기 말 1.80%로, 지난 2022년 6월 말(0.91%)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
결국 악화한 경영 실적이 첨예한 노사 대립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카드론 확장 등 단기 수익을 추구했던 MBK의 경영 전략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MBK의 노사갈등, 고용 불안정 등 사례는 지난 2015년 인수한 홈플러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서 홈플러스 인수 당시 MBK는 직원들의 실업 문제가 제기되자 고용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며 강제적 인력 감축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홈플러스 노조 측은 회사가 인위적 구조조정이 없다는 말로 실제 해고만 하지 않을 뿐, 점포 매각 등 직원들이 스스로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홈플러스 인수 이후 MBK는 실적이 부진한 점포 등 20여 개 지점을 팔아 4조원에 가까운 빚을 갚았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20년 통합부서 제도 도입 등으로 일부 직원들이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투입되는 등 업무 과중을 호소해 왔다.
또, 시설 투자를 줄이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많아졌고, 이러한 요인들이 직원들의 퇴사를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규 채용이 이뤄지고 있으나 이 같은 문제로 10명 중 7명은 금방 퇴사해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게 노조 측 입장이다. 실제로 국민연금 가입자 기준 홈플러스 임직원 수는 2015년 2만6477명에서 올해 9월 기준 1만9465명으로 26.5%가량 감소했다.
MBK는 롯데카드와 마찬가지로 홈플러스 엑시트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홈플러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분할 매각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매수자를 찾지 못한 채 내부 잡음만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전례들을 토대로 최근 MBK가 영풍그룹의 손을 잡고 추진 중인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에 있어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고려아연 측은 MBK·영풍 연합이 경영권을 쥐게 될 경우 실적 악화를 넘어 국가기간산업 기업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9월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이제중 부회장과 핵심기술인력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MBK가 경영권을 갖게 될 경우 전원 퇴사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어렵게 쌓은 ‘비철금속 세계 1위’ 타이틀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앞서 MBK의 경영 전례를 봤을 때 대부분의 직원이 사실상 해고 압박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과 지역주민들의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