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희원이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조명가게’로 첫 연출에 도전했다. 경험에 기반해 배우와의 소통에 집중한 그는 “매일 눈치 봤다”며 자신의 배려를 겸손하게 표현했다. 소탈하고 섬세한 면모를 모두 갖춘 감독의 탄생이다.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희원 감독은 “밥 사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같이 밥을 많이 먹었다. 전화도 촬영 끝나면 모든 사람한테 했었다”며 “다들 스스로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촬영 현장을 돌아봤다.
‘조명가게’는 어두운 골목 끝을 밝히는 유일한 곳 ‘조명가게’에 어딘가 수상한 비밀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강풀 작가는 ‘무빙’에 이어 ‘조명가게’ 각본도 직접 썼다. ‘무빙’에 참여한 배우였던 김희원이 ‘조명가게’ 감독이 된 배경이다.
“강풀 작가님이 ‘무빙’에서 제 연기가 제일 좋았다고 했어요. 다 초능력자인데 저만 초능력이 없었잖아요. 그런데도 초능력자와 싸우려면 학생들을 그만큼 사랑해야 하는 거잖아요.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그래서 학생들을 사랑하는 장면을 넣어야 한다고 의견을 냈었어요. 실제로 대본이 좀 바뀌었고요. 그런 부분에서 설득당했다고 하셨죠.”
하지만 선뜻 강풀 작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한다. ‘강풀 유니버스’가 원체 방대하고 작품마다 치밀하게 엮여 있어, 이를 영상화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출을 맡게 된 이유는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였다. “대본을 받았을 때 너무 어려워서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첫 작품인데 망하면 어떡하냐’ 생각도 많이 했죠(웃음). 그런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소재로 하는, 이런 이야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하게 됐어요.”
막상 ‘조명가게’를 선택한 후에는 언제 고민했냐는 듯 연기까지 직접 해 보이며 온 힘을 기울였다. “‘카메라를 어디에 놔야 화면이 잘 잡히고 배우들이 감정을 잘 살릴까’, 이런 부분을 고민했어요. 동선도 짜면서 콘티를 기획해야 했고요. 제가 연기를 직접 해서 배우들이 도움을 받았다는데, 사실 현장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해야 적절한 카메라 구도를 잡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 게 더 컸죠.”
‘조명가게’는 주지훈, 박보영, 김설현, 배성우, 엄태구, 이정은, 김민하, 박혁권 등 내로라하는 라인업을 자랑한다. 여기에 출연진 다수가 김희원과 친분이 두터워 이들의 호흡은 큰 관심을 모았다. 연출로서 캐스팅 회의에 처음 참여해 본 그는 “나도 이렇게 평가를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우연히 저와 친한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니까 다행이다 싶더라. 좋은 사람들과 친하다고 생각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특히 기대 이상의 연기력으로 호평받고 있는 김설현에 대해 “제가 칭찬을 듣는 기분인데, 제 연기 칭찬보다 100배는 더 좋다”며 뿌듯해했다. “(김)설현은 시골에도 어울리고 부잣집에도 어울리고 나쁜 역할을 해도 어울리고, 되게 묘해요. 꾸며놓는 대로 비춰져요. 그게 배우로서는 부러워요. 모든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배우상이 아닐까 해요. 연기를 주문하면 거부감 없이 되게 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요.”
중환자실 간호사 영지로 분한 박보영의 캐스팅 비하인드를 전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열애설이 언급돼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당시 독감에 걸려서 아파 죽는 줄 알았어요. 근데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무음으로 해놓고 안 받았어요. 그렇게 한참 자다가 봤는데 전화가 80통 넘게 온 거예요. 매니저한테 전화했더니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박)보영이도 전화 와서 ‘선배님 어떡해요’ 이랬어요. 황당했죠. 그때 진짜 많이 아팠어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배성우를 택한 이유 역시 진솔하게 밝혔다. 김희원 감독은 “한 2년간 매일 10시간씩 걸어 다녔다고 하더라. 반성을 많이 했다”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이어 “캐스팅할 때도 캐스팅되고 나서도 얘기가 없을 수 없다. 배우로만 생각하고 얘기해 보자는 의견이 많았다. 여러 회의 끝에 성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독이 아닌 형으로서 안타까운 심정도 내비쳤다. “실제로 미쳤냐고 그랬죠. 연극 하다가 힘들게 여기까지 온 건데, 멍청한 짓이라고 했어요. (배성우가) 술자리에서 술을 안 먹었는데 누가 사진을 찍었대요. 그래서 파출소에 가서 스스로 음주 검사를 하고 싶다고 했대요. 잘했다고 했어요. 이 친구에게는 평생 짐일 거예요.”
김희원 감독은 출연진을 향한 애정 못지않게 장면마다 대단한 열정을 쏟았다. 서사를 관통하는 버스 사고 신을 위해 실제로 당한 교통사고의 기억까지 빌렸다고 한다. “차에 타서 두 바퀴 굴러본 적이 있어요. 운전석 뒤에 탔었는데 차가 덜컹할 때 유리가 천천히 날아오는 게 보였어요. 그러다 살았다 싶었는데 옆으로 기울더라고요. 만화처럼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구르면 안 다칠 것 같아서 천장에 팔을 댔는데 구를 때마다 머리를 찧었어요. 그 기억을 넣고 싶었어요. 다들 빗방울이 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슬로우를 걸어서 물방울로 보여요. 제 기억에 근거한 거예요.”
“욕만 안 먹어도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된 ‘조명가게’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다기보단, 요즘 사랑이 필요한 시대잖아요. 따뜻하게 연말에 보시기 좋아요. 무서운 드라마 아닙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