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시 한번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이 대표의 탈이념·탈진영 발언은 최근 정체된 민주당 지지율을 타개하고,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우클릭’ 외연 확장 행보라는 해석이다.
이 대표는 23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면서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다. 새로운 성장이 진정한 민주공화국, 그리고 함께 사는 세상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견에서 이 대표는 보수 진영의 의제로 꼽히는 민간 주도·정부 지원, 주식시장 선진화·활성화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고, 기업의 성장 발전이 곧 국가 경제의 발전”이라며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민간 주도, 정부 지원’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탈이념·탈진영’을 내세우며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은 최근 답보 상태인 지지율과 무관하지 않다는 풀이가 나온다. 과거에도 그는 당이나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이 제기될 때마다 실용주의 전략을 꺼내 들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연임에 도전하며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당시 이 대표가 연임 도전을 공식화하자 당 안팎에서는 친명 일극 체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계열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당대표 연임의 전례가 없던 점도 비판의 지점이었다. 이에 그는 ‘민생’과 ‘실용’을 내세운 투 트랙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하며 당원들을 설득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유예를 둘러싼 당론 결정을 앞두고 여론이 요동쳤을 때도 실용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9월29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념성향에 대해 “보수에 가까운 실용주의자”라고 말했다. 결국 이 대표는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강행하는 게 맞다”면서도 “1500만 주식 투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당론을 결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절차가 속도를 내면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이 대표의 실용주의 노선은 중도층 공략을 위한 행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비상계엄 사태를 고리로 한 대여 공세보다는, 실용주의에 기반한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여권을 정면으로 겨냥하기보다는 비상계엄 이후 악화된 민생과 경제 상황을 극복해낼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편 여당은 이 대표의 실용주의 노선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3일 논평을 통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년 내내 정치투쟁, 이념투쟁에 골몰한 이 대표가 그간의 기조와 정반대의 말을 하고 있는 점이 다소 의아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 기자회견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국민 앞에 입증하려면 이 대표는 민주당이 그동안 주장해 온 기본소득, 기본주택 지역화폐 등 포퓰리즘성 기본사회 시리즈부터 폐기 선언하라”며 “이러한 진정성 있는 행동이 없다면 이 대표의 기자회견은 정치적 변신이자 분장술에 불과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