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10일 국내의 한 언론이 취재 결과 에너지 정책과 원자력 연구·개발 및 군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해 규제하는 조치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하면서 한국과 미국 간의 원자력 협력이 큰 타격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 언론은 기사 제목을 “[단독] ‘핵무장론’ 확산에 미, 한국 ‘민감국가’ 분류…AI 등 첨단기술 협력 길 막힐라”로 달아 마치 한국에서의 핵무장론 확산이 미국이 이 같은 조치에 착수한 것처럼 단정적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한국이 갑작스럽게 민감국가로 분류된 원인은 한국 정치권과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핵무장론일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3월 10일자 기사는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그동안 항상 ‘비 민감국가’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민감국가 명단으로 분류된다는 공문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기관들에 이달 초에 통보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공문에는 기존의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등에 더해 이번에 새로 한국을 비롯한 5개국을 4월 15일부터 민감국가 명단에 추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만 ‘민감국가’로 지정된 것이 아니고 다른 4개국도 민감국가 명단에 추가된다는 것인데 그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의 3월 10일자 기사에 “미국 에너지부는 원자력 산업부터 핵무기에 들어가는 핵물질까지 모두 관리하는 부서이고, ‘민감국가’를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핵확산 우려”라며 “한국에서 핵무장론이 확산된 것이 이번 조치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말한 전문가가 최근에 페북에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이 전문가가 미국의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인 지인에게 물어본 결과 “한국의 핵무장론보다는 ‘수미 테리’와 같은 활발한 방첩활동을 감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페북에 글을 올렸다.
만약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인 지인의 분석이 맞다면 문제의 전문가가 3월 11일자 기사에 한 답변은 틀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전문가는 페북에 올린 글을 곧바로 삭제했다.
문제의 3월 10일자 기사는 미 에너지부의 규정을 보면, 민감국가로 분류될 경우 원자력 분야를 비롯해 인공지능(AI), 양자과학, 첨단 컴퓨팅 등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 협력을 엄격하게 제한한다며 ‘정치권의 무책임한 핵무장론’이 한국의 안보를 강화하기는커녕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에너지부(DOE) 대변인은 3월 14일 최근 DOE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는 연합뉴스 질의에 “DOE는 광범위한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전 정부[바이든 행정부]는 2025년 1월 초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에 추가했다”고 답변했다.
다시 말해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서도 ‘민감국가’가 아니라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했다는 보도부터 오보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오보에 기초해 ‘정치권의 무책임한 핵무장론’이 한국의 안보를 강화하기는커녕 큰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한 전문가들의 지적도 전혀 근거 없는 것이 드러났다.
이 같은 오보는 그동안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고, 이미 실패한 한반도 비핵․평화정책을 지지해온 해당 언론사와 일부 전문가들의 ‘확증 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DOE) 대변인은 연합뉴스의 질문에 대해 이어서 “현재 한국과의 양자간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새로운 제한은 없다”며 “DOE는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을 증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DOE의 이러한 설명은 한국이 SCL 목록 내에 포함됐지만, 양국간 에너지·원자력·핵 정책 관련 협력은 변함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DOE는 그러면서 “목록에 포함됐다고 해서 반드시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많은 지정국은 우리가 에너지, 과학, 기술, 테러방지, 비확산 등 다양한 문제에 있어 정기적으로 협력하는 국가들”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SCL에 포함됐다고 해서 미국인이나 DOE 직원이 해당 국가를 방문하거나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마찬가지로 해당 국가 국민이 DOE를 방문하는 것도 금지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문과 협력은 사전에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 덧붙였다.(Cf. 박성민․송상호, “美정부 "바이든정부서 한국, 민감국가 목록 최하위 범주에 추가"(종합),” 『연합뉴스』, 2025.3.15. 참조)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민주주의국가에서 정치인들이나 전문가들의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우방인 미국의 행정부가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이 마치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기사를 쓴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반대 빌미를 찾고자 하는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의 ‘확증 편향’성향을 다시 보여준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 대변인은 연합뉴스의 질문에 대해 “이전 정부는 2025년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에 추가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다수 언론들이 한국이 민감국가 목록의 최하위 범주에 추가했다고 소개하는 것도 부정확한 보도이다.
한국을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는 것은 그와 구별되는 ‘민감국가’ 목록에 추가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SCL에 추가한 2025년 1월의 한국 상황을 돌아보면, 그 전인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조치가 있었고 이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같은 달 14일에 가결되는 정치적 격변이 있었다.
DOE 홈페이지에 따르면 민감국가는 정책적 이유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국가로, 국가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을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기준에 의하면 한국은 당시 그리고 현재에도 심각한 ‘지역 불안정’으로 인해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이다.
2024년 12월과 2025년 1월에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조치와 그 후폭풍으로 인해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론 논의는 아예 실종되었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정치권에서의 자체 핵무장론 확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에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추가했다는 주장은 당시 상황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억지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