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반(反) 이재명’ 구호만 남은 진영 대결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정조준하며 출마를 선언하고, 각종 발언에서도 이 전 대표를 향한 공격에 몰두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자기 목소리 없이 반명에만 기대는 전략”이라며, 이러한 경선 구도가 극단의 진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경선판에는 ‘드럼통 퍼포먼스’까지 등장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의원은 1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드럼통에 들어갈지언정 굴복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드럼통에 들어간 사진을 게시했다. 이는 영화 신세계에서 사람을 드럼통에 가두고 협박하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으로, 강성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서 이 전 대표를 희화화하는 밈(meme)을 정치적으로 차용한 것이다.
이처럼 자극적인 퍼포먼스까지 등장한 것은 4명의 본선 진출자를 가리는 국민의힘 1차 컷오프를 앞두고 경선 경쟁이 격화됐기 때문이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3강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4번째 주자’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나경원·안철수 의원, 보수 핵심 지역인 경북을 기반으로 한 이철우 경북지사 등이 다양한 전략으로 주목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14~15일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대선 경선에 공식 돌입했다. 오는 22일에는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을 대상으로 한 100%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통해 본선에 진출할 4명의 후보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 당심 50%, 민심 50% 비율로 2차 경선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외치는 메시지는 ‘이재명 저지’다. 홍 전 시장은 연일 ‘반이재명 빅텐트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빅텐트를 구성해 이재명 정권을 막아야 한다”며, 비이재명계는 물론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무소속 출마 가능성이 있는 유승민 전 의원, 새미래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까지 연대 대상으로 언급했다. 지난 14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는 “이번 대선은 이재명 정권이냐, 홍준표 정권이냐를 가르는 양자택일”이라며 강한 대립 구도를 부각했다.
김 전 장관 역시 같은 날 “이재명을 이기기 위해선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빅텐트 구상에 동조했다. 앞서 9일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다 나와서 조금씩 표를 나눠 먹으면 결국 이재명이 당선되는 것”이라며, 자신이야말로 ‘깨끗한 후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 전 대표는 14일 한국일보 시사 유튜브 ‘이슈전파사’에 출연해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면 정치 보복으로 몇 년을 후퇴할 것”이라며 “공수 교대만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도 “이재명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안철수”라며, “이재명에게 가장 쉬운 상대가 누구인지도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다”고 한 전 대표를 겨냥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이재명을 이길 수 있는 ‘본선 경쟁력’을 갖췄다고 주장하며, 정책이나 비전보다는 ‘반명 프레임’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구도가 계엄 사태 이후 심화된 진영 대립을 대선 국면까지 끌고 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날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경선은 정치의 몰락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후보들이 당심을 잡기 위해 ‘반이재명’ 외에는 내세울 카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엄 사태 이후 격화된 진영 갈등이 대선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야권 관계자도 “모두가 이재명 입만 바라보고 있다. 정작 본인의 비전은 들리지 않는다”고 꼬집었고, 여권 관계자 역시 “당원들은 이제 정책보다 이재명과 맞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보고 있다”며 ‘반명’ 전략의 현실적 배경을 설명했다.
친명계 원외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이날 논평을 내고 나 의원의 ‘드럼통 퍼포먼스’에 대해 “정치 이전에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죽음을 정치 도구로 희화화하고 상대 후보를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방식은 민주주의 기반을 허무는 정치 파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