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안~수도권 초고압직류송전(HVDC) 전력망을 확충하기 위한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하남시 반대로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다.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의 인허가 결정에 이어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이현재 하남시장과 면담까지 했지만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채 평행선을 걷고 있다.
25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전날 오후 김 사장과 이 시장은 하남시청에서 비공개 면담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만남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동서울변전소 증설을 둘러싼 한전과 하남시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양측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며 소득 없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측은 “하남시가 ‘옥내와 허가’는 가능하나, 증설의 경우 주민수용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며 “증설이 아니라면 동해안~수도권 HVDC를 끌어와 전기를 사용할 수 없어 옥내화 부분허가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은 한전이 약 7000억원을 들여 오는 2026년 6월까지 기존의 변전 시설을 옥내화해 확보한 여유 부지에다 HVDC 변환소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1단계 사업인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는 경북 울진에서 경기 가평까지 총 230km를, 2단계 동해안~동서울 송전선로는 겨익 양평에서 하남 동서울변전소까지 50km 구간을 잇게 된다.
원전, 화력발전 등을 통해 동해안에서 생산돼 수도권으로 공급되는 추가 전력이 안전하게 도달하려면 증설이 필수적이라는 게 한전 측 입장이다. 실제로 동해안 지역의 발전 용량은 총 17.8GW(기가와트)인 데 비해 송전용량은 14.5GW로 한참 부족하다. 이로 인해 동해시 북평석탄화력발전소, 삼척시 삼척블루파워발전소 등에선 전기를 보낼 방법이 마땅치 않아 가동을 중단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반면 하남시는 전자파, 소음, 도시 미관 훼손과 더불어 주민 반대 등을 이유로 이를 불허해 왔고, 결국 한전은 경기도에 행정심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지난해 12월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하남시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한전 측 손을 들어줬지만, 하남시에서 여전히 반대 입장을 펼치며 사업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재생에너지 등 발전원 증가에 따라 한전 주도의 국가전력망 확충이 시급하지만 각종 에너지 정책의 혼선과 동시에 사업별 주민수용성 문제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처음 착수한 ‘345kV 북당진-신탕정 송전선로’ 프로젝트는 지난해 말이 돼서야 가동을 시작해 국내 최장기 지연사업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한전 측은 이번 사업에서 주민수용성 확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다는 입장이다. 전날 지자체장-사장 간 면담이 결렬된 이후 한전은 호소문을 내고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하남시의 불허 처분을 취소한다’고 결정했음에도 하남시는 이를 무시하고 인허가를 지연하고 있다”며 “이는 재량권을 남용한 부당행정이며, 단순히 특정 지역만의 문제를 넘어 국가전력망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전은 “당사는 주민수용성 확보를 위해 일곱 차례 이상의 설명회를 자발적으로 실시했고 이번 사업은 46년간 운영해 온 기존 변전소 부지 내에서만 진행되기 때문에 주민생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설명했다”며 “또, 비용이 더 들더라도 송전선로 일부를 땅 속에 묻고 야외 설비를 건물 안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으며, ‘소음·경관 개선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건물 설계와 디자인도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자파 걱정은 심정적으론 이해가 되지만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와 같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 수준의 이야기”라며 “공인된 전문기관에 의뢰해 주민들이 원하는 51개 장소에서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변전소 주변의 전자파는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생활 전자파 수준이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고, 전력설비를 단순히 설치만 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상시 근무하는 업무겸용 복합사옥으로 개발해 전자파가 유해하지 않음을 직접 입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33만 하남시민들이 매일 사용하는 모든 전기 역시 멀게는 400km 떨어진 발전소로부터 수많은 경과지역을 거쳐 모두의 대승적 이해와 협조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무엇보다 전력망 확충의 걸림돌 제거를 위해 정부와 여야가 모두 합의해 ‘전력망 특별법’까지 어렵게 제정한 지금, 하남시가 이러한 국가적 노력을 거스르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한전 직원들은 지난주부터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전력공급이 시급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하남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주거지 인근에 변전소가 들어서는 만큼 주민 우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편이나,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이 내려진 만큼 하남시는 한전과 이러한 간극을 좁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라며 “다만 증설 과정에서 정부와 전문가 그리고 시민이 함께 할 수 있는 조정기구 설립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 또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