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여진 계속…“6만쪽 다 읽고 판결했나?”

대법원 판결 여진 계속…“6만쪽 다 읽고 판결했나?”

더불어민주당, 6만쪽 다 읽었는지 의문 표해
대법원 “상고심 특성…다 읽는 것 아니다”
“법리적용만 따진다”…학계·법원·법조계 가세

기사승인 2025-05-04 19:21:14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법원이 이재명 대선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한 판결을 놓고 연휴 기간에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판결을 ‘3차 내란’으로 규정하며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와 국정조사, 특검이 필요하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집단 광기’라고 맞서고 있다.

이재명 후보 파기환송 판결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와 국정조사,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이재명계’ 의원인 김민석 상임공동선대위원장 겸 수석최고위원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에는 입 닫았던 대법원이 군사작전 같은 파기환송을 했다”고 질타하면서 “고등법원은 재판부 배당 및 기일 지정으로 속전속결로 이어받았다”고 법원을 향해 날을 세웠다. 

김 위원장은 “대법관들이 챗GPT보다 탁월한 속독력으로 6만 페이지 기록을 독파했다는 것인데, 국민은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전자문서를 다 읽었는지 즉각 공개 답변을 해야 한다”고 대법원을 직격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정반대 입장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소추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4일 페이스북에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자 민주당은 대법원장을 탄핵하려고 한다”며 “묻지마 범죄자의 흉기 난동처럼 탄핵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라고 썼다.

권 원내대표는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의 거짓말에 대해 죄를 물은 것이 쿠데타라면 거짓말을 권장하는 것은 헌정수호라도 된다는 뜻인가”라며 “한 사람의 죄를 방탄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붕괴시켰다”고 꼬집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전원합의체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와 같은 논쟁은 정치권을 넘어 법조계로도 이어지고 있다. 4일 일부 법학자와 현직 판사 등 법조인들은 판결에 관여한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전체 기록을 모두 검토하고 숙지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당사자인 대법원 측은 “상고이유를 제한하는 규정, 사후심이자 법률심인 상고심 특성 등을 고려할 때 대법관들이 모든 기록을 전부 읽고 재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상고심 특성으로 인해 1쪽에서 6만쪽까지 기록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읽어야 판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각 업무 방식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원칙을 지켰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와 그 배경에 관한 ‘사실관계’는 2심이 인정한 것을 그대로 따르되, 이후 법리 판단에서 ‘허위사실의 공표’와 ‘사실과 의견의 구별’, ‘발언의 해석’에 관한 법리가 제대로 적용됐는지 심리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실관계는 1·2심에 별 차이가 없고 대법원도 사실관계는 동일한 것을 전제로 법리 적용에 있어서만 원심의 오류가 있음을 들어 파기환송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희대 대법원장이 읽은 판결문에서도 대법원은 ‘2심 법원이 법리를 오해했다’는 점을 반복해서 지적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사실관계 인정이 틀렸다는 내용은 없었다.

대법관들이 사건 접수 후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 이전부터 기록을 검토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대법관 심리를 보조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판사)들도 대거 동원돼 기록을 검토하고 대법관들에게 보고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서 “형사기록 전자 스캔으로 (대법관들이) 기록은 모두 보셨다고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관들은 원본과 전자기록을 모두 활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소송기록을 숙독할 시간도 없었고 견해 차이를 치열하게 내부 토론할 여유도 없이 그냥 몇 대 몇으로 밀어붙였다”고 지적하면서 “사법 정치 개입에 대해 대법원장이 책임지고 거취를 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올 것”이라고 대법원 비난 대열에 가세하기도 했다.

청주지법 한 부장판사 역시 “6만쪽 정도는 한나절이면 통독해 즉시 결론 내릴 수 있고, 피고인의 마음속 구석구석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관심법”이라고 비꼬는 내용의 글을 내부망에 올렸고, 부산지법 부장판사도 “결국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비판 자체가 법원의 신뢰와 권위를 잠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반면 지방법원장 출신 강민구 변호사는 SNS에서 “대법원의 정상적인 절차적 결정에 대해 정치적 불복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라며 “그들이 주장하는 ‘기록을 못 봤다’는 말 자체가 대법관들의 능력과 진실성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명확해 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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