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계 3곳 중 2곳은 현행 탄소중립 정책을 규제로 인식하며, 인센티브 중심으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기준 1000대 제조기업을 대상(120개사 응답)으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산업계 의견을 조사한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금년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이하 NDC) 제출과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 수립을 앞두고 산업계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됐다.
설문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4.2%가 국내 탄소중립 정책이 인센티브 요인보다 규제 요인이 더 많은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응답기업의 4.2%만이 현행 탄소중립 정책에서 인센티브 요인을 체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중립 정책의 최상위 법령에 해당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1조는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지향하고 있으며, 배출권거래법 제3조는 배출권거래제가 경제 부문의 국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한경협은 “기업들이 현행 탄소중립 정책을 규제로 인식하고 있어 경영활동과 국제경쟁력 확보에 제약요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업계는 2030 NDC의 달성가능성을 37.0%로 ‘낮음’ 수준으로 평가했는데, 특히 응답기업의 과반(57.5%)이 달성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달성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5.0%에 불과했다.
한경협은 이러한 산업계의 평가가 한국의 탄소집약적 산업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산업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중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다배출 업종의 비중이 2022년 기준 약 73%를 차지하는 등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어려운 산업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응답기업의 과반(52.5%)은 배출권거래제의 유상할당 비중을 현행 10%로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업은 할당된 배출권 중 정부가 정한 일정 비율을 경매방식으로 유상 구매하는데, 현행법 제12조는 이러한 유상할당 비중 상향을 의무화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발전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상향할 것을 예고한 바 있다. 한경협은 배출권 유상할당 비중 상향 시 배출권 구매비용 및 전기요금 인상 등에 따른 산업계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때문에 한경협은 산업계의 부담을 고려해 규제에서 현행 탄소중립 정책을 인센티브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유사한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일본은 기업의 투자를 지원하고 경제주체들의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기반의 탄소중립 정책을 운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또, 한경협은 국내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를 고려할 때 글로벌 정책 동향을 반영해 실현 가능한 NDC 목표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요국은 탄소중립 정책 이행에 따른 산업 경쟁력 저하 및 탄소누출에 대비해 탄소중립 정책의 강도를 조정하고 있다는 관점에서다.
아울러 한경협은 기업들의 배출권거래제 이행비용 부담을 완화시켜주기 위한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배출권거래제의 강도 상향은 기업들의 이행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경협은 “기업의 배출권 할당량이 감소할 경우 기업은 부족한 배출권을 구매하기 위한 비용부담이 증가한다”며 “게다가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비중이 증가하면 배출권 구매비용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 부담도 가중된다”고 부연했다.
독일과 일본 등 주요국은 자국 기업의 이행비용 부담 완화의 목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하거나, 저탄소기술 혁신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는 정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산업계의 탄소중립 이행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유인체계 마련이 선결돼야 한다”며 “규제에서 인센티브로의 관점 변화를 통해 경제성장과 탄소중립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