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고스티나 세가토리는 모델을 서며 번 돈으로 카페 ‘탱브랭’을 차렸다. 세가토리는 모델 시절 알던 예술가들이 자신의 카페를 사랑방처럼 드나들기를 바랬다. 탱브랭은 ‘탬버린’이다. 탬버린을 컨셉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포스터를 만들어 광고도 했다. 사무엘 빙은 일본 판화를 수입하여 이곳에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카페 ‘르 탕부랭’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시대의 감성을 담은 예술적 캔버스였다. 그곳에서 세가토리는 생맥주를 마시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고, 빈센트는 일본 판화의 흔적을 그림 속에 녹여냈다. 이 작은 카페는 마치 파리의 보헤미안 정신을 응축한 무대처럼,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철학이 뒤섞이는 장소였다.
그 당시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여인은 사회적 금기를 깨는 존재였다. 하지만 빈센트는 이 여인의 고독 속에서 시대의 변화를 포착했고, 그녀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했다. 붉은 모자는 과거 플랑드르 공국의 남성들이 쓰던 실린더형 모자에서 변형된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스타일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한 시대의 공기를 마시고 그 속에서 자유를 꿈꾸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카페의 풍경, 고독한 인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저항의 미학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예술의 본질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낯선 결이 느껴질 때가 있다. 모로코의 카페 한편에서 담소를 나누는 남성들의 모습은 자연스럽지만,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여성들의 부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튀르키에의 그랜드바자르에서 커피를 배달하는 손길도,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목소리도 모두 남성이었다. 그날의 풍경은 마치 오랜 전통과 사회적 규범이 시간을 따라 굳어진 흔적처럼 보였다.
미술사를 수강 중에 ‘미국 여성의 자유와 한국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비교’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자유’란 무엇이며, ‘평등’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세상의 일부만을 조명하는 기준이 정당한 것인가? 머릿속을 스치는 반문, 이슬람권에서 여성의 인권이라는 묵직한 질문은 단순한 여행의 인상을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감각적인 풍경과 생각,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질문. 이 경험은 단순한 여행의 순간이 아니라, 세상을 읽어내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빈센트에게 인상주의는 단순한 기법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의 붓끝에서 변화한 것은 단순한 채색 방식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 그 자체였다. 네덜란드 시절 그가 그렸던 농부들은 영원성을 띠었지만 현실과의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파리에 온 그는 인상주의가 품고 있던 순간의 빛과 색채,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일상성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그는 쉽게 모델을 구할 수 있었고, 그중 가장 특별한 인물은 이탈리아 출신의 세가토리였다. 세가토리는 마네, 제롬, 코로 등 이전 세대 화가들의 모델이었고, 이미40대로, 다른 화가와 동거하며 아이까지 있는 몸이었다.
당시 화가들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출신의 볼륨감 있는 몸매의 모델을 선호하였다. 마네가 프랑스 인 빅토린 뫼랑을 모델로<풀밭 위의 점심>, <올랭피아>를 그리며 이런 불문률이 깨지게 되었다.
그녀는 11점의 단순한 누드 모델이 아니라, 빈센트의 삶과 감성에 깊이 연결된 존재였다. 예술과 현실이 뒤섞인 공간에서 그들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 그리고 상처로 얼룩졌다. 세가토리의 임신에 기뻐했던 빈센트, 그러나 낙태로 인해 그는 깊은 낙담을 했다. 더 나아가 세가토리가 그의 그림을 처분한 사건은 결국 관계의 단절로 이어졌다.
빈센트는 언제나 사랑에 서툴렀다. 그의 감정은 종종 지나치게 진지했고, 때로는 어리석을 정도로 맹목적이었다. 사랑을 놓친 그는 종교와 사회주의에 빠졌지만 훗날 그는 그것이 대체물이었음을 깨달았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신성한 것은 종교나 이념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그는 말했다. “종교나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하는 것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한데”. 빈센트에게 예술은 삶과 사랑의 기록이었다. 그의 붓이 그려낸 모든 순간은, 실은 그가 열망하던 관계와 감정을 담아낸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며 시대를 초월하는 감정을 읽는다. 색채 속에 담긴 외로움, 붓질 속에 녹아 든 갈망, 빈센트의 삶은 곧 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예술은 사랑을 쫓았던 한 인간의 고백이었다.
나도43살 전에는 형이상학적으로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인간인 이상 어떻게 정신과 육체가 균형을 이루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한때 개성 넘치는 말투와 한복을 입고 노자 강의를 하여 개그의 소재가 된 학자가 있었다. 공부(工夫)는 ‘쿵후’라며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하는 것만이 아닌 신체까지 단련시키는 일이라며 강의 중 팔굽혀펴기를 했다. 그분의 다른 책도 읽었지만 이 퍼포먼스만 또렷이 기억이 난다.
빈센트는 동생 테오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전했다. 즐기고, 재미를 느끼고, 책을 읽어라. 그리고 예술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강렬한 색채와 강한 힘을 찾아야 한다. 건강을 돌보고,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공부라고 그는 말했다.
20살의 전혜린도 동생 채린에게 조언을 남겼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오락과 책을 자연 속에서 찾아야 했다. 저녁이면 박물관의 수풀 속에서 책을 펼쳐야 했다. 보들레르와 하이네, 괴테와 바이런, 그리고 카뮈의 ‘이방인’을. 그렇게 독서로 깊어진 눈동자를 가진 친구와 공휴일에는 남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봐야 했다. 집이, 사람이, 도시가 얼마나 작은가를 바라보며, 읽은 책을 두고 끝없는 논쟁에 빠져야 했다.
두 사람의 말은 시대를 넘어 하나의 가르침으로 남는다. 삶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색을 느끼고, 논쟁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삶의 방식이다.

빈센트에게 일본은 가 닿을 수 없는 꿈이었다. 삶에 찌든 데다 마음마저 좁았던피에르 로티가 묘사한 일본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신비로운 세계’였다.
낭만적인 작가로 그리스에서 태어난 일본인 라프카디오 헌과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곳을 ‘영원히 목가적인 땅’이라 칭송했다. 그러나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일본은 결국 현실의 그림자가 없는 이상향에 불과했다. 빈센트는 우키요에를 통해 그곳을 상상했고, 그 선명한 색채와 단순한 선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일본을 캔버스 위에 펼쳐 나갔다.
아르카디아, 제너두, 파라다이스, 도원경 등 이상향은 언제나 인간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었고 그곳을 동경했다. 그러나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나 다다를 수 있었던 도원경처럼, 빈센트에게 일본은 캔버스 위에서만 존재하는 나라였다.
파리에서 그는 점묘법을 연구했지만, 작은 점을 찍는 대신 긴 해칭을 쌓아 자신만의 강렬한 색채를 만들어냈다. 원시적이고 거칠지만 강렬한 빨강, 노랑, 초록의 보색은 그가 살아 있는 순간을 증명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붓을 들지 않았다면, 그는 더 깊은 절망 속에 머물렀을 것이다.
빈센트에게 그림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작가의 말>
오는 8월 11일 하나투어에서는 제가 도슨트로 ‘11박 13일의 유럽예술여행’을 떠납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파리의 3대미술관 중 하나인 오르세미술관을 찾아갑니다. 오르세에는 루브르 소장작 이후인 1848년부터 1914년 1차대전 발발 전까지의 상징주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등 서양회화, 조각, 공예품 등을소장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수는 1100점에 달합니다. 대표작으로는 밀레의 <만종>,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올랭피아>, <발코니>, <피리 부는 소년>, 드가의 <14 살의 어린 무용수>,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오르낭의 매장>, <화가의 아틀리에>,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 르누아르의 <뮬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녀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