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법관 증원’ 공약에…법조계 ‘신중론’ 강조

이재명 ‘대법관 증원’ 공약에…법조계 ‘신중론’ 강조

민주당, 정책 공약집서 사법개혁 완수 의지…구체적 방안은 미지수
대법관 하루 평균 34건 사건 처리…‘10초 재판’ 비판도
전문가 “증원 취지 공감, 운영체계·중립성 고려해야”

기사승인 2025-05-31 06:00:0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법관 수를 늘리겠다는 선거 공약을 내놓은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법조계는 공약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대법원 운영 체계와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최근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정책 공약집을 공개했다. 해당 공약집에서 민주당은 “사법 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공식화했다. 다만 대법관 수를 얼마나 늘릴지에 대한 구체적인 규모나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이다. 이 중 4명으로 구성된 소부 재판부에서 사건을 우선 심리하고, 사회적 쟁점 사건 등은 13명이 전원합의체에서 최종 판단한다.

그간 대법관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사법연감을 보면 2023년 기준 상고사건은 3만7669건에 달한다. 실제 재판업무에 투입되는 12인에 산술적으로 대입하면 대법관 1인당 3139건을 처리해야 한다. 소부에 배당된 사건 수는 대법관 4인 기준 1만2556건(3139건x4명)이 된다. 대법관이 연중무휴로 일한다고 해도 하루 평균 34건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의 상고심은 사실상 ‘10초 재판’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소송 당사자 입장에선 충분한 심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 이 후보는 대법관 수를 늘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며 상고심 지연을 해소하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법부 조직 개편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법조계에서는 대법관 수 확대가 단순히 공약 차원에서 언급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적잖다.

특히 대법관 임명을 두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더욱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법관 구성 방식도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현재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 3분의 2 이상 동의’ 요건을 도입하겠다는 상반된 입장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법관 증원 논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제도적 뒷받침 없이 인원만 늘릴 경우 사법 체계 전반의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 수를 늘리면 전원합의체에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면서 “결과적으로 기존의 대법원 체제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증원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공약이라면 사법부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현 체제에서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대법관만 임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여당이 주장하는 대법관 3분의 2 동의 임명에 대해선 “야당이 일정 규모를 유지하는 한 실질적 의미는 크지 않다”며 “오히려 입법부가 사법부를 과도하게 견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유사한 의견을 제시했다. 차 교수는 “한 정권이 대법관 정원을 늘려 다수를 편향된 인사로 채울 경우 대법원을 사실상 장악할 수 있게 된다”며 “이는 사법부 독립성을 침해하고, 삼권분립 원칙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법관 증원은 일시적인 방식이 아닌 제도 개편과 병행해 순차적으로 늘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
김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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