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정의 1도 올린 세상] 대한민국 엄마의 소망

[이연정의 1도 올린 세상] 대한민국 엄마의 소망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

기사승인 2025-06-04 11:20:52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

“너도 너 같은 딸 낳아서 길러봐라” 

대한민국에서 딸로 태어났다면 이런 말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얼마 전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폭싹 속았수다’ 드라마는 삼대에 걸친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연출한 드라마다. 애순과 관식 신드롬을 만들 만큼 두 사람의 풋풋하고도 달콤한 모습은 뭇 시청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제주도의 풍경도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작가가 직접 지었다는 시 역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필자는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달콤한 사랑 이야기보다 삼대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제주에서 태어난 잠녀(해녀)의 딸, 애순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애순네 가정에 풍파가 이어진다. 파도가 아버지를 집어삼켰고, 재혼한 어머니는 잠수병으로 요절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당차고도 억센 모습은 애순에게 삶의 지령처럼 각인되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헌신과 사랑은 애순이를 좌절에서 매번 다시 일어서게 한다.

가난은 줄곧 그녀를 뒤따르며 꿈과 사랑을 잃게 하지만 애순은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스스로 사랑을 선택했고, 가정을 일구며 자녀를 돌본다. 애순이의 딸 역시 세대를 잇는 가난에서 엄마의 강인함을 물려받는다. 가정 교육은 꿋꿋하게 삶을 지탱해 가는 부모의 모습에서 저절로 일어난다.  

삼대에 이른 엄마의 살아가는 모습은 유전자처럼 딸에게 새겨져 세상을 살아지는 뿌리가 된다. 

‘폭싹 속았수다’는 우리에게 전한다. 삶의 우여곡절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좌절과 실패의 견딤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누구나 겪어야 할 공통의 슬픔이다. 우리네 엄마들의 삶 역시 불행과 행복의 연속선상에 있을 것이다. ‘불행한 삶이 자식에게 대물림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고집스러운 발버둥은 자녀가 긍정적 자아를 갖고 성장하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많은 것을 드라마 속 대사에서 찾아본다.  

“엄마니까 좋지”

이 보편적 진리를 우리는 왜 늘 잊고 사는 걸까?

“엄마가 가난하지, 네가 가난한 거 아니야. 애순아, 쫄아붙지 마. 너는 푸지게 살아”

자녀의 자존감은 엄마의 당당함에서 길러지는 것을 우리는 왜 잊고 있을까?

“어차피 사람은 다 고아로 살어. 살면 살아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인데, 우리는 왜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까?

“어린잎은 가랑비에도 다 찢긴다.”

부모의 폭언, 폭력은 자녀에게 상처와 분노를 키운다는 것을 왜 모를까?

“그러지 말걸. 여지없이 본 대로 자라는 것을. 귀한 자식에게 귀한 것만 보여줄 걸 그랬다.”

소중한 것일수록 말도 행동도 조심해야 할 터인데, 우리는 늘 쉽게 노출하고 후회한다.  

나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엄마와 똑 닮은 딸이 되었다. ‘너 같은 딸을 낳아서 길러보라’라는 문장을 착실히 살아가고 있다. 사춘기 맘고생을 꽤 시켰던 딸은 자라면서 착한 딸이 되어 갔다. 그럼에도 부모와 사회에서 몸살을 앓는 딸이 상처를 이겨내지 못할까 조바심을 내며 우산을 들고 딸의 삶을 기웃거렸다. 가랑비에도 찢기는 어린 딸아이의 마음에 비를 피할 작은 지붕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거친 소나기가 온 날이면 참회의 기도를 올리면서.  

각자의 자리에 엄마가 있다. 

이 땅의 엄마들이 이해보다는 배려를 갖췄으면 좋겠다. 애순의 딸 금명이가 사랑에 실패하고 상심에 빠져 본가를 방문했을 때이다. 애순이는 딸이 세상에서 단 100그램도 사라지지 않도록 밥을 지어 먹였다. 인내심을 가지고 딸아이가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에너지를 보충했다. 그것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필자는 이 땅의 엄마들이 딸이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 나갈 수 있도록 당당함을 갖췄으면 좋겠다. 본인의 삶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모두가 고아라지만 딸아이에게 우산이 되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으면 좋겠다. 

‘엄마처럼만 살라 해’라고 말하는 광례의 당당함이 대를 이어 애순과 금명에게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이 된 것처럼. “너 같은 딸 낳아서 길러봐라” 가 아닌 “나 같은 딸 낳아서 길러 봐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살지 말아라”가 아닌 “나처럼 살아도 아무 문제 없다”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엄마의 소망을 빌어본다. 

“살면 살아진다. 딸아, 엄마가 있잖아” 

우선 나부터 쫄아붙은 마음을 펴 보자.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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