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국보다 앞서 체코·베트남과 통화한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 외교’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외교의 관행보다 수출·투자 등 실질적 이익이 걸린 국가들과의 조기 정상 외교에 나선 것으로, 외교의 무게중심이 ‘명분’에서 ‘실익’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이 대통령은 11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와 첫 전화 통화를 갖고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사업 본계약 체결을 환영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양국 간 경제 협력을 더욱 확대시키는 시금석”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이례적으로 체코를 주요 강대국 다음 순서로 선택한 것은, 수주 규모만 약 25조원에 달하는 대형 원전 사업과 한국 원전 산업의 해외 진출 성과를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직후 미국 등 주변 강대국과의 정상 통화를 우선하는 것이 관례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순으로 통화하며 쿼드(Quad) 중심의 안보 외교에 방점을 찍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미국, 중국, 일본, 인도 순으로 통화하며 균형외교 기조를 드러냈다. 반면 이 대통령은 미국, 일본, 중국에 이어 체코, 베트남과 통화하며 경제적 실익을 중시한 실용외교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올해는 한·체코 수교 35주년이자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1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라며 협력 확대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두 정상은 원전을 넘어 첨단산업, 인프라,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로 협력의 외연을 넓혀가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체코 원전 수주와 연쇄 정상 통화를 계기로 해소되는 분위기다. 한전기술,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등 ‘팀코리아’로 불리는 체코 원전 수주 주역들의 주가도 모두 이날 강세를 보였다.
베트남과의 통화도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대통령은 12일 오전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약 25분간 통화하고,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을 고속철도, 원전 등 인프라 분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1992년 수교 이후 교역, 투자, 인적 교류 등에서 양국 관계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평가하며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고, 르엉 끄엉 주석은 “경제 발전 및 고도화에 있어 신뢰할 수 있는 핵심 파트너로서 한국과의 관계 강화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고 강유전 대변인이 전했다.
아울러 르엉 끄엉 주석은 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을 요청했고, 이에 이 대통령은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깊이 있는 논의를 고대한다”며 향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한 고위급 교류 활성화 의지도 밝혔다.
같은 날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도 통화를 갖은 이 대통령은 이날 두 정상과의 통화에서 경제협력 강화에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주요 강대국보다 앞서 체코·베트남과의 정상 통화를 추진한 것은 외교적 수사보다 실질적 경제 이익을 우선한 전략적 판단이라는 평가다. 전통적인 외교 순서를 따르기보다, 실용주의와 국익 중심 외교를 새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전통적 외교 순서를 뛰어넘어 체코·베트남과의 통화를 앞세운 것은 수출과 투자 등 실질적 국익을 고려한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적 접근”이라며 “외교의 무게중심이 실익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