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이 환자 20명, 많게는 25명을 돌봅니다. 숙련된 간호사는 계속 줄고 신규 간호사는 늘어나 업무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중소병원에서 수간호사로 근무 중인 김진경 씨는 19일 열린 ‘환자 안전과 간호사 보호를 위한 간호법 개정’ 국회 토론회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놨다. 지난해 2월 시작된 의정 갈등으로 인해 의사 인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하지 못한 중증 및 응급 환자들이 대거 중소병원으로 전원되고 있다. 이에 간호 인력의 번아웃이 날로 심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수간호사는 “간호 요구도가 높은 환자가 늘어나면 간호사의 업무 과중은 필연적”이라며 “경력 간호사 인력을 늘려야 하지만 현재 인력 확대 기준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고, 미준수 시 처벌 규정도 없어 이를 지키는 병원이 많지 않다”고 짚었다. 이어 “일부 병원에서는 교대제 시범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상 중소병원이나 지방병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단편적이고 일률적인 배치 기준이 아닌 병원 종별, 환자 중증도, 근무 형태 등을 반영한 인력 기준이 간호법에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양병원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요양병원의 실태를 전하기 위해 참석한 김민건 간호사는 “한 근무조(듀티)당 소수의 간호사만 배치되다 보니, 행정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차지 간호사 한 명이 5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며 “서류 작업에 매몰돼 직접 환자를 간호할 시간이 부족하다. 때로는 보호자와 환자에게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라고 호소했다.
인력이 부족해 신규 간호사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김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는 단 5일간의 교육을 받고 바로 책임 간호사로 투입된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는 환자도 간호사도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간호사로서 책임을 다해 환자를 돌보고 싶다”며 “제 손으로, 마음으로 환자를 간호할 수 있도록 간호조무사를 포함한 법적 인력 배치 기준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여성 경제활동 인구 20명 중 1명 ‘간호사’…현장 남은 간호사, 절반 수준
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간호사 면허 소지자는 총 48만925명으로, 경제활동 중인 20~64세 여성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병원 현장에 남아 있는 간호사는 그 절반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임상 간호사 수는 25만2855명에 그쳤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배성희 이화여대 간호대학 교수는 의료기관 내 만성적인 간호사 인력 부족의 원인으로 현행 의료법의 기준 미비를 꼽았다. 배 교수는 “국내 간호사 수 자체는 충분하지만 번아웃과 직무 불만족 등으로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의료법상 인력 기준과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이 실제 임상과 맞지 않아 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다.
의료기관 인력 기준은 그간 의료법을 통해 정해져 왔다. 의료법 제36조에 따르면 연평균 1일 입원환자 2.5명당 간호사 1명을, 외래환자의 경우 12명을 입원환자 1명으로 환산해 간호사 수를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간호사 1명이 최대 몇 명의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명확한 상한 기준이 없고, 24시간을 3교대로 나눠 근무하는 간호사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특히 처벌 조항이 없어 기준을 지키지 않더라도 병원에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
간호사 채용을 유도하기 위해 시행 중인 인센티브 정책도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간호관리료 차등제’는 간호사 수가 많고 환자 수가 적을수록 높은 등급을 부여해, 건강보험 수가를 더 많이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 간호사가 맡는 환자 수나 업무 강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병상 수를 줄이거나 인력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수치를 맞추는 경우도 있어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배 교수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인해 지금도 간호사 1명이 12명 이상의 환자를 담당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미국, 호주, 일본 등은 법적으로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정해 1:4, 1:6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수의 실증 연구에서도 간호사 부족은 환자의 사망률과 입원률을 높이고, 재원 기간을 늘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적정 인력 기준 마련과 인센티브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간호법 제5장 ‘간호사 처우 개선’ 인력 기준 확립 추진
대한간호협회는 오는 21일 시행되는 간호법에 간호사 배치 기준을 명확히 반영하고자, 간호법 제29조 개정의 근거를 도출할 계획이다. 현재 간호법 제5장은 ‘간호사 등의 권리 및 처우 개선’을 다루고 있으며, 여기에 ‘간호사 대 환자 수’ 기준을 구체화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간협은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위원장 1인과 위원 7인으로 구성된 TF에는 학계 인사 5인, 상급종합병원 및 중소병원 간호사 2인이 포함됐다. 이들은 구체적인 기준 마련과 협회 정책 방향 공론화, 관련 법령 개정 작업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TF는 기존처럼 ‘총 근무 간호사 수’가 아니라 실제로 직접 간호를 제공하는 간호사를 기준으로 환자 수를 배치하도록 하고, 기준 미준수에 따른 제재 규정을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 또 지역 간 간호사 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병원의 간호사 수 정보를 공개해 공정성을 높이고 환자의 중증도, 병원 종별 특성, 간호사 근무 형태, 부서별 특성 등 4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반영할 방침이다.
신경림 간호협회 회장은 “적정 간호사 배치는 환자의 생존율, 회복력,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로 최소한의 법적 기준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며 “간호법 시행과 함께 실질적인 개정 활동을 통해 제도 변화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