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통원 치료를 받는 환자의 장기 복용 약값을 실손건강보험으로 보장하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검토에 착수했다. 권익위 권고가 반영될 경우 기존 실손보험 가입자가 혜택을 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권익위가 지난 18일 보낸 의결서를 검토하고 있다. 의결서에는 ‘장기 처방조제비’를 신설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설 필요성과 영향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장기 복용할 약을 한 번에 타는 만성질환 환자들은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 비용을 실손으로 보장 받기 어려워 자비로 부담해 왔다. 현행 실손은 통원 보장한도를 1일 10~30만원으로 제한한다. 여기에는 약값과 진료비, 주사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3세대 이전 실손은 약값에만 별도로 회당 5~10만원 수준의 일일한도까지 두고 있다.
이에 권익위는 통원 보장한도와 별개로 장기 처방조제비를 보장하는 표준약관 개정을 권고했다. 권익위는 의안을 통해 금융위와 금감원에 “장기처방 조제비는 향후 수개월 동안 쓸 약값으로, 통원일당 보장한도로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대상은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한 달 이상 복용해야 하는 약을 일시에 수령하는 경우로 제한했다.
금융위는 권익위 권고에 대해 현행 장기 처방조제비 보장이 실제 부족한지와 표준약관 변경을 통해 보장을 늘린다면 보험료에 미칠 영향은 어떤지를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표준약관 변경은 신규 가입자에게만 적용된다. 금융당국이 표준약관을 바꿀 경우, 기존 가입자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통원 보장한도 제한을 받는 기존 실손보험 가입자는 3519만명이다. 이 중 85%가량인 2994만명은 1~3세대 실손에 가입돼 있어 약값 일일한도 제한을 추가로 받는다. 권익위가 지난 4월 실손 가입자 3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43.9%가 진료비나 약값이 한도를 넘어 보험금을 못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장기처방 약값으로 10만원 이상 썼다는 응답자도 절반(53.2%)이 넘었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그동안 기존 실손보험 계약 변경에 강하게 반대해 왔다. 정부는 앞서 실손 상품 손해율이 높아지자 2017년 이전 판매된 1~2세대 실손에 대해 보장범위를 축소하려 했으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대신 정부는 앞으로 출시될 실손과 건강보험을 개편하고 기존 가입자의 전환을 유도하는 우회책을 모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선택형 특약’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해당 공약은 초기 실손 가입자에 대해 일부 보장을 포기하면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제도다. 선택형 특약이 도입되면 과도한 보장뿐 아니라 약값 보장도 가입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기존 실손을 변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보험업계는 보장 확대 여부와 방식에 대해 금융당국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존 가입자에 대해서도 개편해주지 않으면 약값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권익위 권고는 앞으로 약관을 개정하라는 것”이라며 “기존 실손에 반영은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