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절은 집에 태극기를 달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날이다. 이날 또다른 감동을 주는 태극기가 있었다. 15일 아산 신창면 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제1회 아산 고려인 축제’에서다.
‘광복을 위해 싸워주신 의병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 만세.’ 축제장 입구의 대형 태극기에 참가객들이 글을 남겼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러시아식 이름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박다리야, 박엘레나 가족’ ‘알렉산드라, 세르게이, 행복해’ 외에 리아이나, 김밀라나 등. 고려인 어린이들은 러시아어로 말하면서 놀았지만, 태극기에는 ‘나라사랑’ ‘대한민국 만세’ 등 삐뚤빼뚤 한글로 글을 썼다.
아산 신창면은 고려인 1만여 명 모여 사는 동네다. 면인구 3만여 명 중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충남고려인지원협회 이정 대표는 축제를 즐기는 고려인들을 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늦었지만 첫 축제를 연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면서 “고려인 공동체가 대한민국과 하나 되는 축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축제장에 러시아어 노래가 울려 퍼졌다. 고려인 노래자랑대회다. 어린 소녀가 로제의 ‘APT’를 한국어·러시아어·영어 섞어 불렀다.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함께 손동작 춤을 따라 했다.
노래자랑 참가자 대부분은 러시아어로 노래했다. 유일하게 아는 노래가 있어 반가웠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잘 알려진 ‘백학’이다. 한 남자 참가자가 멋들어진 저음으로 열창했다.
마지막은 찬조 출연한 천안 70대 여성 6명의 춤 공연이었다. 그리 능숙하진 않은 춤 솜씨였지만 배경음악을 러시아 노래로 택했다. 러시아에서 살다 온 동족(同族)을 배려한 것이다. 예상 밖으로 고려인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같은 민족이 느끼는 피의 끈끈함이다.
축제장에는 한복경연대회가 열리는 탓도 있지만, 대여소에서 한복을 빌려 입은 고려인들이 많았다. 어린이들은 더운 날씨에도 한복을 입고 즐겁게 뛰어 놀며 춤도 췄다.
고려인은 러시아말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한국어로 말을 걸면 바로 한국말로 답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산의 고려인은 같은 한(韓)민족이다. 할아버지·아버지가 일제강점기 타지에서 갖은 고생을 겪은 우리 겨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