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제가 가장 갖고 싶은 것, 안구 마우스와 컴퓨터 의료기기를 부착해 이동할 수 있는 휠체어’.
불치의 희귀질환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이원규(50)씨가 하루종일 엄지 발가락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여 만들었다는 A4 용지에는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사진과 함께 이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가 이동할 수 있는 휠체어를 소원하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 도전’인 대학강단에 서기 위해서다. 지난달 27일 서울잠실동 집에서 만난 그는 사지가 거의 마비돼 특수하게 고안된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이씨는 2004년 루게릭병과 6년 넘게 싸우면서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책을 넘기며 어렵사리 공부해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광의 박사모를 쓰던 날 그는 세상을 향해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 희망이 있는 한 그 희망을 향해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고 외쳤다. 하지만 잔인한 병마는 그에게 삶의 희망을 쓰게 해 준 그 손가락마저 앗아갔다. 몸은 구석구석 점점 더 굳어가고 있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건 얼굴 근육 일부와 두 눈, 왼쪽 엄지 발가락이 전부. 혀가 굳어 말을 해도 주변 사람이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는 ‘육체의 감옥’에 꼼짝할 수 없게 갇혀 있지만 또렷한 정신과 언제나 희망을 전하는 웃음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학위 수여식장에서 “기회가 된다면 호킹 박사처럼 음성변환장치를 이용해 국문학 강의를 해보고 싶다”고 했던 그는 이제 그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그의 아내 이희엽(47)씨는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박사 학위를 받은 성균관대를 비롯해 3∼4곳의 대학과 긍정적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전해 준다.
대학강단에 설 준비를 하고 있는 그에게 한 목소리 장비업체는 호킹 박사가 쓰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음성변환장치를 무료로 제공해 주기로 했다. 이달 안에 강의에 적합한 맞춤형 휠체어와 눈동자를 움직여 컴퓨터 화면에 글을 쓸 수 있는 안구 마우스도 구입할 계획이다. 둘 다 1000만원 이상 하는 고가지만 2005년 말 펴낸 자사전 ‘굳은 손가락으로 쓰다’ 판매 수익금으로 충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내 이씨가 귀띔했다.
사지 마비 장애의 몸으로 대학 강단에 복귀해 화제가 됐던 서울대 이상묵 교수에 대해 이씨는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루게릭병 환자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을 봤는데, 그 말에 동감한다”고 했다. 이씨는 “그는 말을 할 수 있지만 나는 말조차 못한다. 그래도 그냥 가만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믿고 한번 해 보려 한다”며 웃었다. 몸은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졌지만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그의 모습이 집을 나서는 기자의 가슴 속에 내내 메아리로 남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민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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