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21일 통일부 관계자들을 메신저로 내세워 북한 조문단 입장을 전해 들었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북한 조문단을 줄곧 안내하며 '그림자 수행'에 나섰고, 조문단 만찬에는 김남식 통일부 교류협력국장이 참석했다.
다만 북한 조문단은 21일 밤까지 우리 측에 무게있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단 22일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북한 조문단 간의 회동을 통해 북측의 깊은 의중을 타진할 예정이다. 이번 회동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고위당국자간 첫 만남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 실무자와 북한 조문단이 21일 밤사이 물밑접근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현 장관과의 회동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메시지가 윤곽을 드러낼 경우, 상황은 급진전될 수 있다. 대화가 잘 이뤄진다면 북한 조문단이 22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는 평양 귀환 시간을 늦출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북한 조문단이 김정일 위원장의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갖고 왔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북측은 이번 조문단의 명칭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특사 조의방문단'으로 정했다. '특사'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한 것은 조문 말고도 다른 역할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의 최측근 인사들로 조문단이 구성됐고 조문단 방문에 맞춰 끊어졌던 남북간 통신선을 21일 임시로 연결했다. 김 위원장에게 중요 사항을 보고할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은 것이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있을 경우 예방 형식을 통한 청와대 방문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도 8.15 경축사를 통해 북측 인사를 언제든지 만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조건없는 남북대화를 강조해 온 마당에 북한 조문단을 그냥 돌려 보낼 경우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다만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해 수위를 조절할 가능성은 있다.
물론 조문단이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메시지를 갖고 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북한이 순수한 조문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면, 정부로서도 통상적인 예우를 갖추는 데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북한이 '통민봉관(通民封官·민간과는 교류하고 당국간 대화는 하지 않는다)' 카드를 구사하지 않을까 하는 의혹을 완전히 떨치진 못한 상태다.
김 전 대통령 서거라는 돌발상황으로 만난 남북 당국이 의미있는 회동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국자간 접촉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하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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