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하토야마 정권 출범…기대와 두려움 가득한 日열도

[르포] 하토야마 정권 출범…기대와 두려움 가득한 日열도

기사승인 2009-09-16 16:59:01
[쿠키 정치] 하토야마 정권의 공식 출범으로 일본 민주주의의 거대한 실험이 시작됐다. 한·중·일 3국이 주축을 이룬 동아시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일본은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방한 제안을 의미있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일 양국의 발목을 잡아왔던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고 미래를 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현해탄 사이를 흐르는 듯 했다.

도쿄에서 만난 사토 소스케(43·남)씨는 16일 “역사의 피해자인 한국 정부가 가해자인 일왕을 초청했다는 데 놀랐다”면서 “아키히토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스즈키 나오미(24·여)씨는 “한·일 양국 모두 과거사를 국내 정치 목적에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일왕 방문이라는 이벤트도 중요하지만 일본은 한국에게 진정으로 사과해야 하고, 한국도 일본의 마음을 이젠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토야마 정권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입장 등은 군국주의 모습을 끄집어 내 한·중을 자극했던 과거 자민당 정권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화해에 기반한 새로운 한·중·일 체제의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 정권의 등장으로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은 움츠러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지금, 일본 열도는 변화에 대한 기대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거대한 물줄기 속에 함께 용해된 듯 하다.

그러나 ‘자민당 55년 독주체제의 종말’, ‘선거 혁명’ 등 거창한 표현이 어색하리만큼 일본 국민들은 침착했다. 2002년 12월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노란 목도리와 2007년 12월 승리를 자축하던 청계천 앞의 군중은 일본엔 없었다. 표로 심판한 만큼, 새로운 일본을 지켜보겠다는 냉정함이 읽혀졌다.

요미우리 신문과 와세다대가 지난 13일 발표한 공동여론 조사 결과는 일본 민심의 바로미터다. 이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 정권에 기대감이 있다”는 응답이 72%에 달했지만 동시에 ‘불안을 느낀다’는 응답도 77%나 됐다.

정권교체 이후 일본에서 ‘변화’라는 단어는 모든 정치현상을 집어 삼키는 용광로다. 그리고 그 변화가 눈앞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관료정치의 상징인 내각 사무차관 회의를 123년 만에 폐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관료주의에서 민주주의로’라는 슬로건을 내건 민주당의 첫 조치다. 후쿠오카 시청 앞에서 만난 기무라 준타로(28·남)씨는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관료들의 반발이 예상된다”면서 “자민당 정권에서 상상도 못한 일들이 벌어져 정권교체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대등한 대미관계’를 기치로 시작부터 미국과 매끄럽지 않은 외교정책에도 관심이 쏠려있다. 일본은 민주당 실험의 성공 여부에 따라 양당체제가 완전히 정착하거나, 변화에 대한 반발로 보수 일변도의 사회로 되돌아 가는 기로에 서 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는 30대 회사원은 “자민당이 영원히 집권할 것 같던 일본 사회에서 이번 정권교체는 집권세력을 국민이 심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면서 “민주당이나 자민당이나 기득권에 안주한다면 민심이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여야가 경청해야 할 말 같았다. 도쿄·후쿠오카=국민일보 쿠키뉴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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