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대졸자가 취업을 위해 ‘고졸’로 속이고 하향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맞춰 고졸 채용을 확대하자 일부 대졸자가 일단 취업하고 보자는 생각에 고졸자 전형에 입사원서를 내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모(26·여)씨는 지난 23일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하며 학력란에 고교졸업 사실까지만 기재했다. 이 회사는 올해 신입사원 채용에 고졸자 할당제를 도입했다. 졸업 후 3년 동안 취업에 실패한 신씨는 27일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을 고집할 여력이 없다”며 “지원한 회사가 고졸자 할당제를 신설했다는 얘기를 듣고 고졸자 전형에 원서를 냈다”고 말했다.
‘스펙’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는 대졸자들은 고졸자 전형을 취업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아무래도 스펙이 뛰어난 대졸자보다 고졸 지원자와 경쟁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가 이달 초 공공기관의 인사규정을 정비해 고졸자가 입사 후 4년이 이상 지났을 경우 대졸자와 동등한 직위를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영향을 미쳤다.
포털사이트 취업 카페에는 고졸로 지원하겠다는 대졸자들의 글이 적잖게 올라왔다. 한 회원은 “토익 700점대 후반, 학점 2점대 중반의 스펙으로는 경쟁이 안 된다”며 “일부 공공기관은 신입사원의 20%를 고졸자로 채용하겠다는데 고졸로 지원할지를 고민 중”이라는 글을 남겼다.
다른 회원은 “고졸 채용을 늘린다니 대졸 채용 자리는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취업만 가능하다면 고졸자가 많이 지원하는 생산직이라도 가고 싶다”고 썼다. 지방 국립대에 다닌다고 밝힌 또 다른 회원은 “입사 이후 학력이 드러날까 걱정되지만 일단 취업부터 하고 볼 일”이라는 글을 올렸다.
고졸자들은 불만이다. 한 전문계고 졸업준비생은 “우리는 3년 동안 취업만 바라보고 공부했는데 입사가 조금 쉽다는 이유로 대졸자들이 고졸 채용에 지원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학력 위조’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인사채용 담당자는 “아직 사례는 없지만 이 같은 지원자가 드러나면 기만행위로 간주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기업 관계자는 “고졸 취업자는 연봉이나 직무에서 대졸자에 비해 불이익이 있다”면서 “고졸로 학력을 속여 지원하는 사람은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