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하트’ 그리며 “시민이 시장입니다”…세계 최초 온라인 취임식 파격 그 자체

박원순, ‘하트’ 그리며 “시민이 시장입니다”…세계 최초 온라인 취임식 파격 그 자체

기사승인 2011-11-16 14:10:01

[쿠키 사회] 16일 오전 11시 열린 박원순 제35대 서울특별시장의 취임식은 파격 그 자체였다. 그동안 각종 취임식이 인터넷으로 중계된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온라인 취임식은 전 세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그동안 시장 취임식은 주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서울시나 관련 부처의 고위 관계자 등을 초청해 진행했다. 주로 시장이 높은 연단에서 서서 선서한 뒤 취임사를 읽으면 외빈이 축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박 시장은 두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시민이 시장입니다. 시민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취임식을 시작했다.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시장 집무실을 일반에 공개했고, 업무 공간 및 휴게실뿐 아니라 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인터넷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집무실을 공개하기 전 시장실 입구에서 다소 상기된 목소리로 “1946년 1대 시장 취임 이후 시장실 공개는 처음 있는 일”이라며 “지금부터 저와 함께 시장실로 함께 들어가시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박 시장은 기존 집무실과 이어져 있던 접견실을 따로 떼어낸 비서실을 맨 먼저 소개했다. 그는 “처음 시장실에 들어왔을 때 너무 넓어 운동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며 “지자체 집무실이 너무 클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박 시장은 일일이 비서관을 소개하며 “시장 잘못 만나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한다”며 격려했다.

이내 집무실 문을 연 박 시장은 제일 먼저 ‘시민의 소리’ 벽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제일 자랑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특별한 벽지”라며 메모지로 둘러싼 벽을 선보였다. 박 시장은 직접 메모지에 적힌 글들을 소개하며 “이 벽을 몇 번이고 확인하면서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발표한 예산안도 재차 소개했다. 박 시장은 “복지 예산을 가장 많이 책정했다”고 강조하며 3년 후 많이 늙은 본인 모습을 그린 캐리커처를 다시 한 번 소개한 후 지난 주말 공사를 마친 책장 쪽으로 다가갔다.

온통 책장으로 둘러싸인 벽 앞에서 그는 “책장이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 왜 그런지 아시느냐”며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갈등이 너무 많았다. 기운 책장은 갈라진 의견으로 잡히지 않는 손을 이어주는 소통의 열쇠다. 갈라진 책장을 책들이 연결해 길을 만들 듯 끈이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책장 위 벽돌을 가리키면서 “내년에 보도블록을 전혀 교체하지 않겠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겠다는 의미”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박 시장은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 재활용 이면지가 놓인 서랍 속, 서울과 세계의 지하철 시스템을 총정리한 보고서, 어린이들의 그림 액자, 샤워실과 간이침대 등이 있는 방을 소개했다.

그는 회의탁자로 이동, ‘시민 시장’ 의자를 선보이며 “시민이 항상 이 의자에 앉아 계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박 시장의 집무실 소개가 끝난데 이어 행정1·2부시장, 정무부시장, 복지건강본부장, 도시안전본부장을 소개한 뒤 국민의례와 선서, 취임사 낭독을 했다. 그는 직접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취임식을 마치고 시장실을 나가던 박 시장은 뒤를 돌아보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번개팅이 있으니 지금 바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만나시죠”라며 시청 밖으로 나서며 취임식을 마무리했다.

이날 취임식은 서울시 홈페이지(mayor.seoul.go.kr)와 모바일 웹(m.seoul.go.kr) 뿐 아니라 네이버, 다음팟, 올레(olleh) 온에어, 판도라 TV, 아프리카 TV 등에서 동시 생중계됐다. 많은 접속자가 폭주해 동영상 생중계가 일시적으로 끊기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서울시 대표 트위터(@seoulmania)에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속속 답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사진=공동취재단

다음은 박 시장의 취임사 전문.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서울특별시장 박원순입니다. 제가 서울시장으로 일한 지도 벌써 오늘로 21일째가 됩니다. 아직은 서울시장이라는 직책이 낯설기도 하지만 또한 벌써 수개월은 된 듯 한 느낌 입니다. 시정을 직접 책임져보니 서울시에는 실타래처럼 얽히고 난마와 같이 설킨 난제들이곳곳에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주민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야하는 뉴타운사업은 저의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심해지는 전세난. 월세난, 줄어가는 일자리, 시름이 깊어가는 재래시장과 골목상권,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영업과 중소기업, 늘어나는 비정규직.그 모두가 새로운 해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겨울의 폭설, 여름의 호우와 산사태가 지금부터 걱정입니다.서울시의 빚은 산더미인데, 쓰여야 할 곳은 더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취임식이냐 스스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 했습니다. 저 박원순의 취임식이 아닌, 바로 시민 여러분의 취임식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서울의 엄중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서울의 미래를 우리 함께 이야기해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지금 서울이 당면하고 문제가, 간단하거나 녹녹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많은 문제들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그 해법을 찾는 첫걸음입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새로움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1%가 99%를 지배하는, 승자가 독식하여 다수가 불행해지는 현상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닙니다.

과도한 경쟁으로 모두가 피폐해지는 삶은, 공정한 세상이 아닙니다.

무차별적인 개발로 환경을 파괴하여 다음세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닙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저는 무엇보다도 복지시장이 되겠습니다. 사람냄새가 나는 서울을 만들겠습니다. 강남.북 어디에 살든 균등한 삶의 질, 최소한의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친환경무상급식에 이어 국공립보육시설의 확대, 여성과 장애인의 지위 개선, 시니어의 보호와 일자리 제공은 더 이상 개인에게 맡겨둘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겨울 저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밥 굶고 냉방에서 자는 사람은 없도록 하겠다는 선언과 더불어 정책투어를 시작합니다. 복지는 공짜도 아니고 낭비도 아닙니다. 복지는 인간에 대한 가장 높은 이율의 저축이며, 미래에 대한 최고수익의 투자입니다.

복지냐, 성장이냐의 이분법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성장이 복지를 가져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오히려 복지가 성장을 견인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OECD 국가 최하위의 복지수준이라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임을 저는 선언합니다. 저는 서울시장으로서 새로운 서울을 꿈꿉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생태 그대로의 자연이 숨 쉬는 도시.

문화와 예술이 삶속에서 녹아있는 공간.

역사의 향기와 삶의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고향 같은 서울을 꿈꾸어 봅니다. 요란하게 외치지 않아도 돋보이고,누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서울.

화려하지 않아도 기본이 바로 서 있고, 소박하고 검소해도 안전한.우리의 서울을 그려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저는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으로,갈등과 대립보다는 협력과 조정의 힘으로 시정을 이끌겠습니다.

현장에서의 경청과 소통, 공감을 통하여시민 여러분의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시정의 단계마다, 분야마다,시민 여러분의 소망과 의견에 서울시는 열려있을 것입니다.

서울시민 여러분은 저 박원순이 탄 서울이라는 큰 배의,선장이고 항해사이고 조타수입니다. 서울호가 나아갈 이 새로운 역사의 물결에 함께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시민이 시장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 11. 16. 서울시장 박원순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