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폭과의 전쟁’ 100일 만에 300여명 구속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 5월 10일 취임식에서 ‘주폭(주취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17일로 100일이 된다. 김 청장은 “주폭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라며 “주폭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서민치안”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이 술 먹고 행패부리는 범죄자에 대해 엄하게 조치하자 주민들은 호응했다. 주폭에게 피해를 당해도 끙끙 앓기만 하고 쉬쉬하던 주민들의 신고도 늘었다. 구속된 주폭만 벌써 300명을 넘어섰다. 일선서의 한 경찰관은 “술 먹고 경찰서 안에서 행패부리는 주폭도 많이 줄었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김 청장이 ‘주폭과의 전쟁’을 선언하자 일선 경찰서에선 건수를 채우려는 실적위주의 단속이 이뤄지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적 쌓기로 단속이 이뤄지다 보니 경찰이 ‘주폭’을 구속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탄원서를 요구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0시5분쯤 김모(38)씨가 만취 상태로 서울 암사동의 한 노래방에 찾아가 “업소에서 술을 판매한 사실을 신고하겠다”며 행패를 부렸다. 관할 경찰서는 김씨의 상습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주변 상인 8명에게서 ‘사회적 격리가 필요하고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받아갔다. 김씨는 결국 구속됐다. 경찰은 또 지난 6월 27일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에서 술을 먹고 상인들을 괴롭힌 이모(40)씨를 구속하기 위해 주변 상인 26명으로부터 탄원서를 받고, 범죄사실 20건을 추가했다. 한 경찰관은 “구속시켜달라는 탄원서를 경찰이 받는 것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털어놨다.
주폭을 구속하려면 상습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젊은 20·30대 주폭보다는 경범죄를 저지른 40·50대가 주로 타깃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16일까지 구속된 주폭 피의자 200명 중 40대(74명)와 50대(72명)의 비율이 73%를 차지했다. 평균 연령은 47.4세에 달했다. 반면 주폭으로 검거된 10∼30대는 17%에 불과했다. 40·50대의 경우 과거 술을 먹고 행패 부린 경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구속되기 쉬운 반면 전과가 적을 수밖에 없는 젊은층은 구속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경찰이 모든 초점을 주폭에 맞추다 보니 경찰 업무를 넘어서는 허드렛일까지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수욕장이나 공원에서 술을 먹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것은 지자체 소관인데 경찰이 괜히 나선다는 것이다. 한 일선서 경찰관은 “우리가 직접 공원 청소를 하고 이 장면을 사진 찍어 보고하기도 했다”며 “범죄자 잡기도 바쁜데 경찰이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서울청이 주폭 척결로 주목을 끌자 경기청은 골목깡패를 척결하겠다고 나섰고, 대전청은 노래방 업주 등 영세상인 상대 갈취폭력자(갈폭)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기획단속이 유행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