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된 이른 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로 불렸던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은 법제화되지 못했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대거 처리하겠다”던 정치권의 선전포고를 고려하면 재계가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재계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4일 “교통신호 위반한 사람을 무기징역에 처하겠다고 결정했다가 징역 10년으로 낮춘 것을 성과라고 볼 수 있느냐”고 되물은 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들이 9월 정기국회로 넘어 갔기 때문에 9월에 더 큰 쓰나미가 몰려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상황이 9월 정기국회까지 이어진 것일 뿐 재계가 얻은 것은 없다”고 잘라 못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법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끼리 정상 거래보다 상당한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했을 경우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의 통과로 대기업의 시스템통합(SI) 계열사들이 큰 피해를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해킹 등을 막기 위해 정보 보안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SI 계열사에 전산·보안시스템 일을 맡기고 있다.
이제 대기업들은 다른 재벌 계열사나 중소 SI업체에 전산·보안시스템을 맡기거나 아니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에 의해 처벌될 수 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진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계열사끼리 거래하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걸리고, 다른 회사와 거래하면 ‘단가 후려치기’라고 오해를 받으니, 대기업보고 이익을 남기지 말고 자선활동이나 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9월 정기국회에서 또다시 입법전쟁을 치러야 할 재계로서는 걱정이 태산같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이미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법안들 때문에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9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통과할 경우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동욱 경총 기획홍보본부장은 “정기국회에서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 확대, 경영상 해고요건 강화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들 법안들은 하나같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하고 기업의 정상적인 인력운영을 심각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