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검색어 기자님들, 밥은 먹고 다니세요?

[친절한 쿡기자] 검색어 기자님들, 밥은 먹고 다니세요?

기사승인 2013-07-18 16:18:01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의 똥개훈련]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제가 좋아하는 안도현 시인의 시집 제목입니다. 그래요, 전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어요. 오랜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불량 기자인데 관심을 못 받아 좀 서운합니다. 그래도 해드리기로 했던 나머지 이야기들 이어가야 하겠지요? 아니, 근데 정말로 이런 기사 쓰고 월급 받는 기자들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안 궁금하신 거예요? 저는, 그래도 몇 몇 분은 몹시 궁금해 하실 거라고 생각하고 마저 쓸게요.

검색어 장사에 뛰어들다!

2006년 정 들었던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www.dcinside.com)를 떠난 저는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인터넷 이슈를 취재하게 됐지요. 그리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몹시도 요상한 업무를 맡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검색어 장사였어요.

물론 디시에서도 인기 검색어에 오르는 이슈들은 가볍게나마 한 꼭지씩 다루긴 했습니다. 디시뉴스에 오면 인터넷 소식을 한 곳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정팬들을 위한 배려였지요. 그래도 기자 각자가 발굴해서 취재하는 기사가 주요 업무였고 어차피 포털에 서비스가 안 되니 검색어 기사를 쓴다고 해서 페이지뷰가 확연히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이쪽 사정은 좀 달랐습니다. 아침에 중앙일보 종이신문에 나오는 기사들이 인터넷에 대거 풀리고 나면 오후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그야말로 검색어 장사로 버티는 꼴이었어요. 조인스닷컴 이용자 유입량의 대부분이 포털을 통해서 달성됐고, 그렇기 때문에 포털에만 매달리게 된 것이지요.

고단하고 서글펐던 검색어 장사

검색어 장사는 고단하고 서글펐습니다. 하루에 세 조로 움직였어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4시에 퇴근하는 기자1, 9시-6시 정상 근무하는 기자2, 오후 3시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는 기자3, 그리고 점심식사 시간인 12시-1시를 책임지는 기자4는 덤입니다. 자기가 검색어 당번인 날은 진행 중이던 다른 기사 취재는 제쳐 두고 검색어 기사만 써야했어요. 검색어 기사 하나를 열심히 써서 올렸는데, 다른 인터넷 뉴스사들이 올린 기사 때문에 검색 결과에서 우리 기사가 밀리면, 똑같은 기사를 붙여 넣고 토씨 한 두 개만 바꿔서 다시 올렸지요.

외롭고 낮고 슬픈 검색어의 늪

때론 엉뚱한 기사를 올려서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어 '김윤미'라는 검색어가 인기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다고 칩시다. 도대체 왜 이 검색어가 1위에 올랐는지 알 길이 없었던 저는 그냥 되는대로 끌어다 붙여서 '하드윤미'에 대한 기사를 만들어 올립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검색어 1위에 오른 '김윤미'는 하드윤미가 아니라 '운동선수 김윤미'였다는 것! 뭐 이런 에피소드는 일일이 나열하려면 끝이 없을 정도지요.

검색어 장사를 이처럼 열심히 돌리다보니 기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내 이름 걸고 이런 일하기 부끄럽다"는 것이었지요. 그때 저희 부서의 에디터와 데스크들은 살신성인하는 마음으로 당신들의 이름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쓴 재탕 삼탕된 검색어 기사들 중 일부는 저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보도된 적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도 재탕 삼탕 설렁탕 곰탕되는 기사들에 기자 이름이 아니라 '인터넷 뉴스팀' '인터넷 이슈팀' 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던데, 그때의 저와 비슷한 상황이지 않을까 짐작해 봅니다.

물론 제가 중앙일보에 일하면서 검색어 장사만 배웠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 선배님들을 만났고 다양한 부서의 시스템도 경험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다른 기사 취재한다고 검색어 당번인 날 소홀히 했다가 동료 기자가 에디터에게 밀고한 일이 있을 정도로 검색어 기사는 중요한 직무 중 하나였어요. 그리고 알음알음 들리기로는 다른 회사 사정도 마찬가지였구요. 여러 언론사의 인터넷 뉴스팀 기자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티 안 나는 재탕을 해낼 수 있을까, 포털은 언제쯤 멸망할까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기도 할 정도였다니까요.

재주는 내가 부리고 재미는 누가 보나?

하지만 요새는 이 검색어 장사도 꽤나 재미가 없어진 모양입니다. 네이버 뉴스 스탠드 도입 때문이지요. 뉴스 스탠드는 네이버 첫 화면에 뉴스 제목이 직접 노출되지 않는 대신 사용자들이 언론사의 간판을 클릭하는 형식입니다. 그 다음 해당 언론사 기사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기사를 골라서 읽게 되지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인터넷 뉴스사의 검색어 뉴스들, 정제되지 않은 소모성 기사들, 심지어 누구네 강아지가 응가한 이야기까지 모두 기사라는 이름으로 네이버에 서비스 되니, 그래요, 원하는 언론사의 기사만 보는 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모든 이용자가 어디 그렇게 되나요? 저부터도 귀찮아서 뉴스 스탠드 클릭 안 합니다.

결국 질 낮은 기사 생산은 한쪽에서 계속되고 있고 뉴스 스탠드가 귀찮은 이용자들은 그냥 '네이버 뉴스'에 들어가서 기사 봅니다. 물론 '네이버에서 보기' 버튼을 눌러서 말이지요. 실제로 인터넷 뉴스사들은 뉴스 스탠드 도입 이후 1/4 가량 페이지뷰가 줄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 많은 페이지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결국 포털 사이트에 정체돼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제가 인연이 있는 세 군데 인터넷 뉴스 관계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모두 같은 말을 하더군요. "요즘 좋은 기사는 사람들이 모두 네이버에서 보고 그나마 유지되던 검색어 장사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이죠.

검색어 장사라면 지긋지긋했던 저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또 난감해집니다. 검색어 기사 대신 좋은 기사로 인정 받으면야 좋지만, 열심히 똥개훈련해서 남 배만 불려준다면 그만큼 약 오르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언론사들이 단체로 움직이는 모양입니다. 제 생각에 아마도 올 하반기는 10여년 인터넷 뉴스 역사 동안 가장 불꽃 튀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윤미 pooopdog@naver.com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뉴스룸 트위터, 친절한 쿡기자 ☞ twitter.com/@kukinewsroom

김상기 기자
pooopdog@naver.com
김상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