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사회 안전망 절실한 아이들
집 나온 애들에게 어른들은 무조건, 일단, 집에 가라고 말한다. 가출 청소년을 다루는 정부 정책의 방점도 귀가(歸家)에 찍혀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돌아갈 가정이 없는 거라면, 귀가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
홍봉선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돌아갈 곳이 없고, 돌아가선 안 되는 아이들을 집에 보내왔다. 그게 틀렸다는 걸 이제 인정할 때”라며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무소불위 친권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친권은 절대적 권리인가=일용직 노동자인 아빠는 밤마다 술에 취해 딸 하영(가명·19)이에게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둘렀다. 아빠가 술에 취한 밤이면 하영이는 몰래 집을 빠져나와 의정부의 한 청소년쉼터에 몸을 숨겼다. 아이가 주기적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기어이 쉼터를 찾아냈다. 쉼터 관계자는 “술 취한 아저씨가 고래고래 고함치며 아이의 머리채를 잡아채는데 (쉼터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너무 답답하고 (아이에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쉼터에 있던 중학교 3학년생 지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혼한 아빠와 살며 폭언·폭력에 시달리던 지수는 쉼터에 도망을 왔다가 아빠에게 붙잡혔다. 쉼터 대표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니 며칠만 우리가 데리고 있겠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아버지는 ‘내 아이를 이런 곳에 둘 수 없다’고 난동을 부렸다”며 “아이가 무서워서 떨어도 친권자인 아버지가 ‘내 아이 내놓으라’고 하면 우리로서는 도리가 없다. 그럴 때 느끼는 무력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털어놓았다.
지수는 며칠 뒤 다시 가출했다. “또 집 나갔다는 얘긴 들었는데 쉼터에는 안 왔다. 여기 오면 또 잡혀갈 텐데 오겠느냐?” 쉼터 대표는 반문했다.
잡혀간 아이들은 예외 없이 또 집을 나간다. 두 번째 가출할 때는 쉼터에도 오지 않는다. 쉼터도 안전하지 않다는 걸 몸으로 배운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최후 안전망마저 영영 빠져나가 버린다.
박현동 의정부시 아동청소년쉼터 소장은 “아빠가 나를 때리고, 엄마가 나를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무서운 게 뭐가 있겠나.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라며 “그렇게 가출, 재가출을 반복할 때마다 아이들의 비행률, 범죄율은 급격히 높아진다”고 말했다.
◇친권보다 중요한 것들=이혼한 아빠가 몇 주일씩 집을 비운 사이 연수(14)는 먹을 것도 없이 방치됐다. 아빠가 돌아와도 나아질 건 없었다. 술 취한 아빠는 “나가라”고 주정을 했고, 쫓겨난 아이는 아파트 계단에 쪼그려 앉은 채 잠을 잤다. 굶고 다니던 연수는 다행히 담임교사의 눈에 띄었다. 교사는 연수의 손을 잡고 쉼터에 갔다. 연수의 사연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됐고, 아이는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엄마에게 갈 수 있었다.
학교가 학대신호를 포착하고, 시스템을 통해 학대가 확인됐으며, 아이는 돌아갈 다른 가정을 찾았다는 점에서 연수는 모범케이스다. 하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이런 행운을 누리지 못한다. 교사는 바쁘고, 시스템은 느리고, 머리 굵어 집이 없어진 아이들은 보육원에도 가기 어려웠다. 중간에 낀 쉼터가 나서는 것도 여의치 않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보호시설이라는 특성상, 학대가 의심되더라도 아이들을 설득해 부모와 연락하고 법적으로 학대 인정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다.
한 쉼터 관계자는 “대다수 아이들은 부모에게 위치가 노출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 데다 그 과정에서 친권자가 나타나 애를 데려가면 권한 없는 쉼터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친권을 제한할 수 있는 학대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한 것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기준 아동학대 등을 이유로 법원이 친권상실을 선고한 경우는 단 3건에 불과하다. 2011년엔 친권제한 1권, 상실 1건 총 2건이었다. 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친권상실은 성적·신체적 학대가 아이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극단적 경우에 내려지는 최후의 결정으로 여겨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양육 및 보호라는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친권 요구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법적으로 친권에 대한 아이들의 방어권을 보호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일단 쉼터장에게 아이를 부모와 분리시킬 권한을 부여하도록 제도를 개선해 쉼터만이라도 안전지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유일한 정책 ‘쉼터’마저 태부족
청소년쉼터는 여성가족부가 가출 청소년을 위해 시행하는 거의 유일한 정책이다. 전국적으로 92개(2012년 기준)가 운영되는 청소년쉼터(일시, 단기, 중·중장기)에서는 기본적인 숙식부터 의료, 용돈, 학교, 직업교육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여가부는 올해 7억6600만원을 들여 11개를 확충한다.
◇20만명 대 1만명=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쉼터 수용인원은 약 1000명, 연인원을 계산해도 1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 해 20만명 정도라는 청소년 가출인구와 이 중 12만∼14만명으로 추정되는 홈리스 청소년에게 안전지대가 돼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최대 1∼2년간 머물 수 있는 중·장기쉼터 다음의 대안이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만 18세를 넘겨 아동보육시설(옛 고아원)을 나오는 청소년에게 보건복지부는 자립정착금, 전세주택자금 등을 지원한다. 가출 청소년들이 중·장기쉼터를 떠날 때는 빈손이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은 똑같지만 ‘시설 아동’과 ‘가출 청소년’이라는 정부 분류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가출은 비행’이라는 오랜 편견이 낳은 정책적 차별이다.
청소년복지지원법을 보면 이런 아이들을 위해 ‘청소년자립지원관’을 운영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이 역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아이들에게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안정적인 주거공간이다. 청소년자립지원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하고 있다”며 “내년에 수도권에 3곳의 청소년자립지원관을 만들기 위해 안을 짜놓았지만 예산에 반영하지 못했다. 8월 중으로 기획재정부에 추가 항목으로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미성년자의 자립지원?=한편에서는 아이들을 ‘시설’에 묶어두는 대신 현실을 인정하고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진규 서울 신림청소년쉼터 실장은 “쉼터를 찾는 아이들은 홈리스 청소년 중 극히 일부이고 다수는 아르바이트를 하든, 범죄를 저지르든 그들끼리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인간의 기본권, 먹고 잘 곳을 해결해주는 게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임대주택 입주권, 기초생활수급권 등을 제공해 범죄에 휘말리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상담이나 교육 등을 배제한 이른바 ‘묻지마쉼터’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아이들이 조건이나 규칙 없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미성년자의 사회적 자립’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급진적 개념이다. 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는 “좋은 환경의 보호기관을 확충해서 아이들을 잘 교육시켜 자립할 힘을 길러줘야지 돈을 주거나 주택을 제공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편에서는 가출 청소년을 불법체류 노동자처럼 부리는 악덕 업주 단속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미성년자 고용에 필요한 ‘부모동의서’가 없다는 약점을 이용한 것이다. 홍봉선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불법 고용의 대가로 아이들은 말 못할 불이익을 당한다. 우리 사회의 슈퍼을”이라며 “신고센터만 제대로 운영해도 해결될 수 있다. 정부의 의지 문제”라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