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토끼와 비슷한 앞니. 흑갈색이나 흰색, 핑크색의 부드러운 털. 쥐처럼 생겼지만 보통 쥐보다 10배는 커 ‘괴물 쥐’로 불린다. 다 크면 꼬리까지 1m, 무게가 20㎏에 달하는 놈도 있다.
낙동강 유역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잡은 뉴트리아 얘기다. 2009년 6월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돼 퇴치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개체수가 줄지 않고 오히려 물길을 따라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반수서동물인 뉴트리아의 천적으로 삵, 너구리가 있긴 하지만 낙동강 일대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유일한 천적은 인간이다. 특히 지난 5년간 낙동강 뉴트리아들을 벌벌 떨게 한 ‘저승사자’와도 같은 존재가 있다. ‘뉴트리아 헌터(사냥꾼)’라는 별칭이 붙은 전홍용(51·경남 김해)씨다. 낙동강유역환경청과 부산 김해 등 관할 지자체 공무원, 주민들 사이에서 그는 유명 인사다.
지난 18일 부산 강서구 낙동강 하류의 대저생태공원과 신덕습지에서 어김없이 뉴트리아와 한판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씨를 만날 수 있었다. 낙동강 본류를 중심으로 맥도강과 평강천 등 주변 하천에 펼쳐진 드넓은 습지에는 사람 키보다 큰 갈대와 온갖 수생식물이 빽빽이 들어차 뉴트리아에겐 더없이 좋은 서식지처럼 보였다.
전씨는 주거지인 김해에서 약 15㎞ 떨어진 이곳으로 매일 새벽 6시쯤 출근(?)한다. 그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에는 뉴트리아 퇴치 장비가 갖춰져 있다. 오토바이 뒤에 달린 수레에는 아침 일찍부터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10여 마리의 크고 작은 뉴트리아가 담겨 있었다. 옆에는 직접 만든 포획 틀과 뜰채, 몽둥이 등 장비가 실려 있다.
“뉴트리아는 야행성이라 해질 때나 새벽녘에 주로 먹이활동을 합니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는 낮에도 양지 바른 곳에 나와 자거나 쉬는 놈들을 볼 수 있어요. 조용히 다가가 몽둥이로 내리칠 때까지도 전혀 몰라요. 서식굴 입구나 이동 통로 등에 포획 틀을 놓아 잡기도 합니다.” 전씨는 “보통 매일 10∼15마리씩 잡아요. 옛날엔 하루 100마리를 잡은 적도 있어요”라며 의기양양해했다.
그는 부산과 김 배추농사를 짓는 평범한 농부였다. 2008년 인근 하천에서 넘어온 뉴트리아가 배추밭을 짓이겨 1500만원의 손해를 봤다. 이후 본업을 팽개치고 본격적인 뉴트리아 잡이에 나섰다. 전문 서적을 뒤져 뉴트리아의 생태적 특성과 포획법을 공부했다. 그가 5년간 잡은 뉴트리아만 3000마리가 넘는다. 잡은 뉴트리아는 땅에 묻거나 요리해 이웃 주민과 나눠먹기도 했다. 고등학교나 수의과대학에 해부 실습용으로 준 적도 있다.
2011년부터는 관할 지자체가 포획 수매제를 시행해 마리당 2만원을 받고 넘긴다. 전씨는 “서식굴을 찾으면 내게는 로또 복권에 당첨된 거나 같다”면서 “굴 한 곳에 최대 17마리까지 살고 있는 걸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포상제가 시행된 후 전국에서 사냥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그의 포획 노하우를 배우러 찾아왔지만 대부분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뉴트리아 확산의 가장 우려되는 점은 토종 생태계 교란과 농작물 피해다.
뉴트리아는 갈대나 줄 등 수생식물의 뿌리, 줄기를 이빨로 갉아먹는다. 개체 밀도가 높아지면 수생식물을 초토화시키고 결국 습지의 자정 능력을 잃게 만든다. 때론 어린 철새나 곤충, 어류 등을 잡아먹거나 새알을 깨기도 한다. 위협을 느끼면 사람도 공격한다. 이빨이 날카롭다.
최근엔 서식지 인근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나리 무 상추 당근 벼 등 논밭 작물과 온실 작물을 무차별로 섭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평강천 일대에서 재배하는 연근을 갉아먹어 매년 1000만원 정도의 피해를 입힌다는 게 전씨의 설명이다.
그는 “요즘은 노지에 심은 김장용 배추의 속만 파먹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씨가 전해들은 농작물 피해만 120건에 달한다. 그는 “얼마 전엔 농가 부엌에 두 마리가 나타나 사람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장마철에는 하천 저수지 등 제방에 만든 서식굴이 둑 붕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낙동강 일대 습지 범위가 워낙 넓은 데다 활동적인 뉴트리아의 특성상 서식 개체수 파악이 힘들다는 점이다. 올해 1월 국립환경과학원의 대략적인 밀도 조사 결과 낙동강 수계에 약 8000∼1만 마리의 뉴트리아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1년에 네 차례, 한 번에 5∼10마리를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전씨는 “낙동강 하류 습지 일대에만 최소 5만 마리, 최대 10만 마리는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환경부와 낙동강유역환경청은 25일부터 시작해 내년 5월까지 본격적인 뉴트리아 퇴치 프로그램을 가동키로 했다. 전씨는 “낙동강에서 뉴트리아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잡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후세에 깨끗한 낙동강을 물려줘야지, 괴물 쥐가 득실대는 낙동강을 물려줘서야 되겠소.”
천적없는 최상위 포식자… 남한강까지 출몰
원래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뉴트리아는 1985년 식용 및 모피 사용 목적으로 국내에 수입돼 농가에 보급됐다. 하지만 생김새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모피 값이 떨어지자 농가에서 사육에 대한 매력을 잃고 심지어 자연에 풀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후 늪지나 하천변을 중심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부산, 경남 지역 등 낙동강 수계를 중심으로 서식하며 생태계 교란과 농가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최근엔 바다 건너 제주도와 충북 충주 등 남한강 수계까지 서식이 확인돼 전국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국 19곳에 분포…7년새 3배 확산=22일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올해 10월 현재 뉴트리아의 분포가 확인된 곳은 전국 19개 행정구역이다. 2006년 6개 행정구역에서 3배 이상 늘었다. 부산 대구 충주 제주 양산 밀양 창원 김해 진주 함안 창녕 의령 합천 경산 성주 등 15곳에선 서식 개체를 과학원 측이 직접 확인했고 안동 상주 문경 예천 등 4곳은 지역민들의 목격 신고가 들어왔다.
뉴트리아는 추위에 약해 주로 영남지역(낙동강과 황강, 남강 수계)에 집중 분포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산발적으로 출몰하고 있다. 대부분 과거 사육 농가에서 탈출하거나 방사돼 같은 수계의 물길을 따라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것으로 보인다. 뉴트리아는 2001년 10월 오소리와 함께 ‘축산법’에 따른 가축으로 등재됐다가 생태계 교란 등 문제가 발생하자 환경부 요청으로 올해 8월 가축에서 제외됐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기타 가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뉴트리아 사육 농가는 없다. 2005년 한때 사육 농가가 최고 13가구, 8238마리에 달했지만 계속 줄어 2011년에는 1가구, 1마리에 불과했다. 대부분 폐사하거나 자연에 풀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몇 마리가 방사됐는지에 대한 통계는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환경당국이 전국 서식 개체수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남한강에도 나타났다=충북 충주 가금면의 ‘입석 낚시터’. 충주호와 탄금호 등으로 연결된 남한강 수계인 이곳에도 ‘괴물 쥐’가 출몰한다는 얘기가 몇 년 전부터 낚시꾼들 사이에 돌았다. 하지만 환경과학원과 원주지방환경청은 올 초에서야 모니터링을 시작했고 그간 서식 흔적이나 배설물만 찾았다가 지난달 뉴트리아 2마리를 확인했다.
환경과학원 길지현 박사, 이도훈 연구원과 함께 지난 5일 입석 낚시터를 찾았다. 넓은 저수지 주변에 갈대와 부들 등 뉴트리아가 좋아할 만한 수초가 무성했다. 이 연구원이 갈대가 쓰러져 평평하게 길이 나 있는 곳을 가리키며 “저기서 어미와 새끼를 봤다. 뉴트리아의 쉼터”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서식지로 추정되는 곳도 여러 개 발견됐다. 길 박사는 “남한강과 낙동강은 수계가 달라 낙동강 쪽에서 올라온 것은 아니다. 과거 주변 사육 농가에서 방사됐거나 번식한 개체들로 추정된다. 농가 등 피해가 보고되지 않은 걸로 봐서 개체수가 많은 것 같진 않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얘기는 좀 달랐다. 낚시꾼 조학수(70)씨는 “물고기 담는 망태기를 찢거나 낚시찌를 망가뜨리기도 해 골칫덩어리”라면서 “탄금호 상류(종포수로)에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뉴트리아 10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입석 낚시터 주인 남동현(52)씨는 “3∼4년 전부터 뉴트리아를 봤다는 사람이 많았고 우리 시금치밭을 망쳐 놓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문제는 뉴트리아 개체수가 늘어나면 영역 다툼이나 먹이 활동을 위해 연결 수로를 따라 북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환경과학원은 현재 남한강 수계를 따라 서식이 추정되는 지역을 선정해 모니터링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정부, 뒤늦은 대응·퇴치프로그램 “글쎄”=뉴트리아의 생태계 교란과 농가 피해 우려는 1999년부터 언론 등을 통해 알려졌지만 환경부는 10년이 지난 2009년에야 뉴트리아를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해 초기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확산 속도가 빠르게 진행됨에도 그동안 국가 차원의 퇴치프로그램도 마련되지 않았다. 또 현재 포획 업무가 지나치게 지자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지자체 간 개별 포획으로 인해 오히려 인접 지역으로 이동이 확산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낙동강유역환경청 관할 부산 김해 등 10개 지자체는 2011년부터 자체 포획단 운영, 민간인 포획 보상금제 등 여러 방법으로 퇴치에 나서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해 포획이 줄거나 중단되면 다시 뉴트리아가 증가하는 등 별 효과를 못 거두고 있다. 환경부와 낙동강유역환경청, 관련 지자체는 올해 6월과 10월에야 두 차례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7월부터 낙동강 하구(신덕습지 2곳)와 우포늪 등 3곳에 ‘인공섬트랩’을 설치했지만 숫자가 적어 지난 3개월간 30여 마리를 잡는 데 그쳤다. 또 내년 예산 2억원을 확보하고 전문 포획단을 꾸려 지자체 합동 퇴치에 나서기로 했지만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부산·충주=국민일보 쿠키뉴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