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세 모녀의 자살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서 빈곤층을 돕는 사회부조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되짚는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실히 살던 모녀를 비극적 선택으로 내몬 현실은 무엇이었는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은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추정소득 180만원 ‘송파 세 모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없었다
“도움 받을 제도가 있었는데 안타깝습니다.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임호근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
“보도를 보고 당연히 지원 못 받을 조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신청해도 수급자가 안 됐을 거예요.”(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지난 며칠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서울 송파구 반지하 월세방에서 목숨을 끊은 세 모녀 사건을 두고 정반대 해석이 핑퐁처럼 오갔다. 정부 관계자들이 나서서 “제도는 있다. 정보가 부족했다”고 해명하자 시민단체에서는 즉각 “현장을 모르는 한가한 얘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세 모녀 비극은 정보 부족이 낳은 우발적 사고일까, 구멍 많은 복지제도가 빚은 필연적 사건일까.
◇‘근로능력’이란 함정=식당일 하며 월 130만∼180만원(추정)을 벌다 넘어져 일을 그만둔 어머니 박모씨(61)와 당뇨·고혈압을 앓는 큰딸(36), 알바를 전전한 둘째딸(33).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지난해까지 38만원), 규모를 알 수 없는 부채. 비정규직 여성 가구였던 세 모녀가 처한 상황이다.
시민단체 쪽에서는 박씨가 팔을 다치기 전에도, 다친 후에도 이들에게는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인정되지 않았을 거라고 단언한다. 양측 모두 ‘박씨가 일할 때 자격미달’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월급이 3인 가족 최저생계비 132만9118원을 넘기 때문이다.
갈라지는 건 부상당한 뒤다. “가능하다”는 정부와 “안 된다”는 시민단체의 차이는 ‘근로능력’ 조항 때문에 생긴다. 현행 기초생활수급제에서는 일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1인당 약60만원의 ‘추정소득’을 부과한다. 돈을 안 벌어도 이쯤 수입이 있을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세 모녀에게는 월 180만원(60만원×3인)이다.
만약 엄마의 부상을 인정받으면 120만원(60만원×2인)으로 떨어진다. 최저생계비(132만9118원) 이하이므로 생계 및 주거급여 수혜 대상은 된다. 하지만 이번엔 상한액에 걸린다. 현금으로 받는 최대액은 107만원. 세 모녀의 추정소득(120만원)보다 낮다. 결국 수급자로 인정받는다 해도 이들은 한푼도 받을 수 없다. 김윤영 국장은 “실제 누가 어디서 얼마를 버는지, 그걸로 밥을 먹고 살 수 있는지 따지지 않는 이런 방식의 추정소득은 사각지대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혈압 환자는 근로무능력자인가=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근로무능력자 판정을 받으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만성질환 있는 큰딸은 당연히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작은딸 추정소득 60만원만 계산하면 47만원(107만원-60만원)이 남는다. 50만원이라는 월세에도 못 미치는 소액이지만 어쨌든 지원을 받을 수 있긴 하다.
그러나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 공동대표는 “합병증으로 마비(지체장애) 혹은 실명(시각장애)이 되지 않는 한 한국에서 고혈압이나 당뇨는 근로무능력자 판정을 받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며 “무능력자로 판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긴급지원제를 둘러싸고도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 동일한 시각차는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세 모녀에게 긴급지원이 가능한 ‘위기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생계비(4인가구 기준 월 108만원 최대 6회)가 지급된다. 박씨의 부상 및 실직은 위기사유에 해당한다. 정부 관계자는 “분명히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반면, 시민단체 쪽 대답은 “못 받는다”이다.
류 대표의 설명이다. “일할 수 있는 두 딸과 함께 사는 엄마가 ‘팔을 다쳐 내가 일을 못하니 도와달라’고 해보자. ‘두 딸은 노나요?’ 틀림없이 이렇게 무안만 당하고 돌아온다. 그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노숙인에게 ‘주소’ 요구하는 나라=수급자들을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또 다른 복병은 복잡한 서류와 긴 처리기간이다. 이를테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는 노숙인에게 주소를, 당장 아파서 의료급여를 신청하는 이에게 2∼3달의 진료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김윤영 국장은 “노숙인들이 다치거나 질병에 걸려 뒤늦게 수급신청을 하려면 거주지를 마련해 확실한 주소를 들고 오라고 말한다”며 “간신히 월 20만원 쪽방비를 모아서 수급 신청을 했다고 해보자. 한번 탈락하면 주소를 유지해 재신청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일이 안 벌어지는 것 같은가”라고 되물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