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장윤형 기자] 지난 2013년 8월 허리통증으로 한의원을 찾은 한 여중생이 있습니다. 이 여중생은 한의사가 한 달 반 동안 7차례에 걸쳐 아픈 부위의 혈을 눌러서 치료하는 ‘수기치료’명목으로 바지를 벗기고 속옷에 손을 넣었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이 사건이 충격을 주는 것은 총 17차례 치료 중에서 여중생이 가족과 함께 한의원에 간 10차례는 핫팩, 침, 전기치료 등과 같은 ‘일반치료’를 진행했고, 여중생 혼자만 한의원에 간 7차례는 진료실에 간호사조차 없는 상태에서 커튼을 치고 ‘수기치료’를 명목으로 성추행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결과는 어떻게 판결이 났을까요. 올해 2월 5일 1심 재판부는 이 한의사의 ‘수기치료’가 정당한 ‘의료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번 병원사용설명서에서는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수기치료가 이뤄지는 병원에서 성추행과 진료행위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모호합니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한 피해 여중생은 현재 법원의 무죄 판결로 큰 충격을 받았고 지난 8월 12일 환자단체연합회가 개최한 제16회 ‘환자샤우팅카페’에 출연해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용기있는 발언이었습니다. 이 여중생은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며 “진료를 빙자한 환자 성추행을 예방하는 법률이나 제도를 만들어 달라”고 강력히 주문했습니다.
“재판에서 무죄가 나왔을 때 절망했어요. 1심 법원 판사님께서 실제로 저한테 힘내라고 하면서 네 잘못이 아니라 그 한의사가 잘못한 거라고 얘기까지 했거든요. 그런데 무죄가 나와서 충격이 더 컸어요. 법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는데,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자해도 몇 번이나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포기하면 저와 같은 피해자가 또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더 이상 숨고 싶지도 않아요.”
이후 환자단체연합회는 국민들과 함께 2심 법원이 1심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진료 빙자 여중생 성추행 의혹 한의사 사건’을 엄중하게 재판하도록 촉구하는 탄원 문자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진료행위라는 것을 빙자한 성추행이 이뤄지는 경우는 물론 아주 극히 드문 일이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자주 찾는 커뮤니티에서 ‘병원 성추행’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다양한 여성들의 사연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한 여성은 “한의원에서 침치료를 받았는데, 진료 부위와 관계없이 가슴 부위에 손을 올린 의사가 있었어요. 이것이 성추행이라고 판단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라고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이것이 성추행인지 아닌지 글로만 판가름 할 수는 없지만, 해당 환자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소통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는 치료를 목적으로 선의의 의도를 갖고 진료행위를 합니다. 의사들은 진료에 필요한 행위를 갖고 환자들이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는 겁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성적으로 민감한 신체부위를 접촉하는 경우 사전 고지 또는 다른 의료인을 반드시 동석시키는 등 진료 빙자 성추행 예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더불어 진료를 빙자한 성추행 예방 환자행동요령 역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불필요한 성추행 시비를 줄이기 위해 의사의 진료 전 사전 설명이 보다 상세히 이뤄져야 합니다. 무엇이든 소통이 없이는 오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겠죠. 진료행위를 빙자한 성추행과 관련한 엄중한 법적 조치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