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조현우 기자] “사양한다고 해서 존중한 것”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낸 유승민 의원의 부친 유수호 전 국회의원이 7일 밤 별세했습니다. 향년 84세. 8일부터 빈소가 마련된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지인들과 여야 정치인 등 문상객의 방문이 줄을 이었습니다. 유 의원은 모친 강옥성씨와 형 유승정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등과 함께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 등은 물론 친박근혜계 핵심인 서청원 최고위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이정현 최고위원, 윤상현·김재원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 의원을 위로했습니다. 친박계 중진인 서상기 의원과 강은희 의원이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했고, 최경환 부총리도 정부 측 인사로 가장 먼저 빈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등이 여당 지도부 조문은 9일로 예정돼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이종걸 원내대표, 신경민 의원 등이 조문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명의 조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직접 비서실장으로 발탁해 ‘원조 친박’으로 불릴 정도로 인연이 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던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에는 박근혜 캠프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기도 했었죠. 하지만 이후 비박계로 멀어졌고, 지난 6월 국회법 개정안 협상 직후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라는 말을 듣고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박 대통령 조화가 없는 것을 두고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상주 측에서 조화와 조의금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정중히 사양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며 “고인의 유지와 유가족의 뜻을 존중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청와대 차원의 조문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조문) 갈 일은 없는 걸로 안다”며 “누구를 보내고 한 건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좀 이상합니다. 일단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과 김현숙 고용복지수석 등이 조화를 보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양승태 대법원장, 황교안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황우여 교육부 장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 100여명도 조화를 보냈습니다. 청와대 해명에 빗댄다면 이들은 고인의 유지와 유가족 뜻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보낸 것이 됩니다.
여론의 시선도 곱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박 대통령이 지난 4월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부친상, 8월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모친상에는 조화를 보냈었다는 보도 인용이 급증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합의 직후 유 의원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직격탄을 날린 박 대통령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는 해석도 쏟아졌습니다.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한 대다수 정치평론가들도 비슷한 해석이 대다수입니다.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이 2대에 걸친 악연이라는 게시물도 유독 많이 보입니다. 유 전 의원이 1973년 박정희 정부에 의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유 의원은 부장판사 시절 1971년 총선에서 공화당원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고 군사정권 반대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을 석방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이종걸 원내대표는 빈소에서 “2대에 걸친 슬픔을 보니 감회가 깊다. 2대에 걸친 고통에 대해 가해자는 말이 없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고인의 유지와 유가족 뜻을 존중했다고는 하지만 박 대통령 조화가 없다면 이처럼 온갖 설이 난무할 것을 과연 청와대는 몰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