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가짜 백수오’ 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흰 머리를 까마귀 머리처럼 검게 만들어준다는 뜻을 가진 백수오(白首烏). 당시 백수오는 여성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건강기능식품의 원료였다. “아빠 보약은 녹용, 아이 보약은 홍삼, 엄마 보약은 백수오”라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였으니 그 인기는 짐작할 만했다.
사건은 시중에 판매 중인 백수오 제품의 90%가 가짜 백수오인 이엽우피소를 사용했다는 소비자원의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됐다. 논란의 중심이었던 기업 내츄럴엔도텍은 검찰 조사 결과 이엽우피소의 혼입률이 완제품 기준으로 0.0016%에 불과하고 이 또한 고의성이 없음이 밝혀지며 무혐의 처리됐다.
이엽우피소는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식용으로 사용된 경험이 없지만 중화권에서는 식품 원료로, 중의학에서는 약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외형이 백수오와 동일하고 특히 건조해 절단한 상태에서는 육안으로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 유전자 검사로만 구분이 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이엽우피소가 마치 쥐약, 독약 수준으로 인체에 유해한 식물이라는 주장이 발표되면서 백수오를 꾸준하게 섭취해오던 많은소비자들이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백수오와 이엽우피소에 대한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사건에 종지부를 찍었다. 2년에 거친 오랜 시험 끝에 뜨거운 물에 가열하는 열수추출물 형태로 가공한 건강기능식품은 안전하다고 발표한 것이다.
사태의 주범으로 몰리던 해당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의로 이엽우피소를 사용한 적도 없지만 미량의 이엽우피소가 혼입되었다고 하더라도 과거에 논란이 되었던 제품들이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혼입량이 극미량이고 열수추출물 형태이기 때문에 위해성 없이 안전하다고 한다.
반면 백수오 분말 상태에서는 독성의 우려가 있다고 발표했다. 한의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한약재에는 독성이 있기 때문에 백수오도 마찬가지로 분말 상태에서는 독성이 있다 하더라도 뜨거운 물에 가열하여 독성을 제거하는 과정인 법제(法製), 식약처에서 말한 열수추출 과정을 거치면 안전하다고 한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약초를 캐서 그냥 먹지 않고 탕약으로 달여 먹은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백수오 사태가 이번 식약처 발표로 모든 의혹을 벗고 백수오 건강기능식품은 안전한 제품으로 밝혀져 다행이다. 하지만 온 국민이 혼란과 스트레스를 겪은 대가로는 어찌 보면 허무하고 허탈한 결과다. 한편으로는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연이어 자극적인 보도만을 내보낸 언론,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의 후진적 민낯이 드러나 참담한 마음까지 든다.
얼마 전 배우 고(故) 김영애 씨의 사망소식과 함께 재조명된 일명 ‘황토팩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2007년, 김 씨가 시작한 황토팩 사업이 소위 ‘대박’이 나서 1700억원 규모로 커져있던 시기, 한 고발 프로그램은 방송을 통해 김씨의 황토팩 성분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며 건강에 큰 위협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당연히 소비자들의 환불 요청이 빗발쳤고 사업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문제는 황토팩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논란이 확산되고 나서야 정부가 직접 나서 검출된 쇳가루가 황토 고유의 성분으로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김씨는 이미 명예도, 돈도, 신뢰도 모두 잃은 뒤였다.
황토팩을 비롯해 공업용 우지 라면 파동, 쓰레기 만두 파동, 포르말린 통조림 사건 등 시간이 지나면서 가까스로 누명을 벗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등돌린 대중과 한번 부정적으로 심어진 인식을 되돌리는 것에는 너무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들에게는 단순히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 잊힐 수 있지만, 논란의 중심인 기업은 불행하게도 도산에 이르거나 더 심한 경우 기업의 대표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경우를 보면 참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백수오 사태도 마찬가지다. 백수오에 관계된 많은 이들에게 아직까지 악몽은 계속되고 있다. 하루 하루 성실하고 정직하게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백수오 밭을 갈아 엎어야 했고 파산 상태에 놓이며 당장의 생계가 어려워졌다. 토종 약초를 활용해 바이오 벤처 사상 최초로 매출 천억을 돌파하며 업계에 새로운 좌표를 제시한 업체는 대중의 싸늘한 시선과 함께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었다.
다중 미디어 시대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국가적 논란으로 만드는 것이 매우 쉬운 상황이다. 따라서 의혹을 제기하는 주체도, 전달하는 언론도, 소비자도 조금 더 신중하게 중립적으로 이슈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극’보다 ‘진실’을 알리고, 알고 싶어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피땀 흘려 일하는 농민이 좌절하고 애꿎은 기업이 누명을 써서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직전에 몰락하는 일이 우리사회에서 다시없기를 바래본다. 글=이상근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중소기업중앙회 중소혁신생태계확산위원회 위원
김태구 기자 ktae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