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재밌으면 관객들도 재밌어 할 거라고 생각해왔어요. 아직 손해를 끼친 적이 없으니 믿을 게 그거죠.”
강형철 감독은 3전 3승의 영화감독이다. 지난 10년 간 각본을 쓰고 연출한 세 편의 영화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아직 1000만 영화 같은 대박을 터뜨리진 못했지만 실패한 적도, 혹평을 들은 적도 없다. 많은 관객을 만족시키는 상업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주로 신인들을 기용하는 그의 새 영화는 매번 기대를 모았다.
영화 ‘스윙키즈’는 강 감독이 4년 만에 들고 온 신작이다. 탭 댄스 얘기인가 싶었는데 이념과 전쟁을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가 묵직했다. 지난 5일 서울 팔판길 한 카페에서 만난 강형철 감독은 디스코와 원작 뮤지컬 ‘로기수’아 어떻게 ‘스윙키즈’로 탄생할 수 있었는지 들려줬다.
“전작을 끝내고 놀다가 우연히 디스코 음악을 들었어요. 신나는 디스코 음악을 듣는데 그 안에 슬픈 몸부림이 느껴졌어요. 신나게 디스코 추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념에 대한 영화를 찍어보고 싶기도 했어요. 평소 안보 문제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한국이 분단국가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동네 친구인 장훈 감독이 뮤지컬 ‘로기수’를 추천해줬어요. 그걸 보고 평소 둥둥 떠다니던 생각을 하나의 뼈대에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윙키즈’는 뮤지컬 ‘로기수’의 큰 틀을 그대로 빌려왔다. 주인공 로기수가 미군 흑인 하사가 추는 탭 댄스에 빠져서 팀에 들어가게 되는 설정과 악당에게 지령을 받는 내용 모두 원작의 것이다. 하지만 원작이 로기수와 로기진 형제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스윙키즈’는 흑인 미군과 북한군 소년의 우정이 중심이 된다. 거기에 서로 다른 이념 문제, 그리고 전쟁의 현실도 들여다본다.
“이념이란 것 자체가 인간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자는 이상적인 시스템이잖아요. 그런데 그 이념이 오류를 일으키면서 인간 위에 군림하고 거기에 인간이 휩쓸리는 어이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죠. 어느 이념이 맞고 틀리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런 이념을 이용해서 행복하고자 하는 극소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절대 다수가 불행하게 되는 게 전쟁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주연을 맡은 가수 겸 배우 도경수에 대한 칭찬도 빠지지 않았다. 강 감독은 도경수의 눈빛, 그리고 연기에 임하는 태도 등이 로기수 그 자체였다고 했다.
“제일 중요한건 얼마나 로기수와 닮아 있는지, 그리고 역할을 잘 소화할 것 인지였어요. 훌륭한 배우가 빛나는 연기를 하면 스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전작도 늘 그렇게 되어 왔고요.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다른 누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도경수를 미팅하러 간 자리에 로기수가 앉아있었더라고요. 이거 뭐지 싶었죠. 경수를 만나면서 미리 머릿속으로 영화를 봤을 정도니까요. 주인이 눈 앞에 앉아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시키겠어요.”
‘스윙키즈’를 본 관객들은 조금 당황할지도 모른다. 밝고 경쾌하게 달려가던 음악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강 감독은 뻔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연말용 해피 무비처럼 뻔하게 가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를 10~20분 보고 이렇게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새로운 인물이 중간에 등장하면서 크게 바뀌어요. 플롯을 주제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쓴 거죠. 기동이라는 꼬마 아이도 이쪽, 저쪽으로 휩쓸려요. 념이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얘길 하고 싶었어요. 뻔하게 간다는 것 자체가 제겐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