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박찬욱 감독 “‘리틀 드러머 걸’ 극장 상영 못 하는 것? 많이 아쉬워요”

[쿠키인터뷰] 박찬욱 감독 “‘리틀 드러머 걸’ 극장 상영 못 하는 것? 많이 아쉬워요”

박찬욱 감독 “‘리틀 드러머 걸’ 극장 상영 못 하는 것? 많이 아쉬워요”

기사승인 2019-03-29 05:00:00


영화 ‘아가씨’를 찍은 박찬욱 감독이 향한 곳은 유럽이었다. 스파이물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존 르 카레의 1983년 소설 ‘리틀 드러머 걸’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영국, 그리스, 체코 등에서 찍었다. 6부작으로 완성된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러머 걸’은 영국 BBC, 미국 AMC에서 방송됐다. 각 방송사의 요구 사항에 맞춰 편집한 덕분에 드라마는 조금씩 다른 형태로 선보여졌다. 박 감독은 만족하지 못했다. 처음 원작을 영상화하기로 마음먹었을 당시 보여주고 싶었던 형태를 감독판으로 재편집했다.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은 한국에서 왓챠플레이, 채널A를 통해 29일 공개된다.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의 국내 공개 소식이 전해진 직후 관심을 모은 건 작품 자체보다 박찬욱 감독이었다. 최근 서울 팔판길 한 카페에서 진행된 박찬욱 감독 인터뷰에서도 작품보다는 박 감독의 생각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왜 이 작품인지, 왜 드라마인지, 왜 해외로 나갔는지 등 ‘리틀 드러머 걸’의 탄생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박 감독은 드라마 매체의 특징과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못하는 아쉬움, 원작을 선택한 배경과 촬영 뒷얘기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Q. 드라마는 처음이시잖아요. 해보니까 어떠셨어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뚜렷하게 있어요. 좋은 점은 아쉽게 잘라내야 하는 장면들이 별로 없다는 점이에요. 원작을 각색할 때 내가 정말 이게 좋아서 했는데, 시간제한 때문에 막상 하다 보면 사라질 때가 있거든요. 이번엔 시간이 충분하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죠. 희생되기 쉬운 게 조연들인데 이번엔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어요. 나쁜 점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한다는 거예요.”


Q. 며칠 전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 6부작을 극장에서 연속으로 관람하는 시사회를 열기도 했어요.

“감독판 전체를 극장에서 보는 건 저도 처음이었어요. 감독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는 건 저한테 제일 중요한 사건이죠. 보고 나니까 ‘리틀 드러머 걸’ 작업이 끝났구나 하고 비로소 실감이 들었어요. 아마 이 작품 전체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관객들도 희귀한 체험을 한 거죠. 아무리 ‘TV 드라마’지만 작품을 만들 때는 ‘영화’를 만든다는 마음이었어요. 기술적인 기준도 영화관에서 틀 수 있는 수준이었죠. TV나 작은 화면에서 볼 거라고 생각해서 작은 화면에 맞는 구도를 취하지 않았어요. 큰 화면에서 보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시사회에 온 관객분들이 제일 좋은 상태로 보셨던 거예요.”



Q. 감독님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첫째는 중간에 딴짓을 안 하잖아요. 집중하게 되죠. 저만 해도 태블릿 PD로 볼 때 딴짓을 하게 되거든요. 그게 제일 큰 차이예요. 두 번째는 창작자 입장에서 화면과 소리에 어느 정도까지는 규격과 기준에 맞춰서 만들게 되니까요. 극장마다 편차가 있어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TV나 스마트폰으로 볼 때와 극장에서 보는 것의 차이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작은 차이에요. 저흰 정말 몇 달 동안 죽을 둥 살 둥 매달리거든요. 미묘한 컬러 차이로 몇 시간 동안 조정하고, 작은 소리도 어느 스피커에서 어떻게 들리냐에 목숨을 걸면서 일한 사람 입장에선 허망한 일이이죠.”


Q. 이번 ‘리틀 드러머 걸’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으니 아쉬우시겠어요.

“많이 아쉽죠.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다만 위로를 삼는 건 좋은 작품은 어떻게 봐도 좋더라는 거예요. 저도 남의 작품을 TV나 아이패드로 종종 볼 때마다 그렇게 느끼거든요. 그런 건 있어요. 작은 화면으로 집에서 보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대충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극장에서 크게 틀어놓고 보는 기준에 맞게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역설적이지만 그럴수록 더 잘 만들어야 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게, 자꾸 끌어당겨야 하니까요. 영화관에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집중하는 환경이 아니라, 자발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환경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스크린 상영 관련해서 넷플릭스 작품처럼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한 영화들이 칸 영화제에 초청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어요.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에요. 대세가 굳어져서 이미 그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요. 창작자나 영화제에서 바람직하냐 아니냐고 말하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그렇게 가고 있고 현실이죠. 한국엔 산이 많다,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하잖아요. 물론 감독 입장에선 내 작품을 극장에서 공개하지 못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에요. 그래서 앞으론 ‘난 이건 안 하면 못 견디겠다’ 싶은 작품이 아니라면, 극장용 영화를 우선으로 할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저처럼 구식이 아닌 감독은 다르겠죠.”


Q. ‘리틀 드러머 걸’은 외국 이야기이고 70년대 배경이라 국내 시청자들에겐 낯설 수 있어요. 총 없는 액션을 담았다는 점도 특이하고요.

“제가 르 카레 선생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런 거예요. 첩보 스릴러라고 하지만 액션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드라마에도 총싸움과 액션은 거의 안 나와요. 그것도 통쾌하게 나오는 게 아니고요. 추격전이나 총싸움, 몸싸움 대신 다른 것으로 긴장과 서스펜스를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작품이죠. 감정의 소용돌이와 관계에서 오는 다이나믹한 심리적인 게임이거든요. 다들 게임을 하고 있어요. 상대방을 속이다 못해 스스로도 속게 돼서 자기 감정에 스스로 혼란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예요. 전 그게 어떤 총싸움보다 재밌다고 생각해요.”


Q. 유럽의 지역성을 영상에 담아내는 것도 중요한 점이었을 것 같아요.

“70년대 말이 배경이잖아요. 우리에겐 생소할 수 있어도 그쪽 시청자들은 직접 겪은 시간대예요. 그래서 그럴 듯 해야 하는 게 중요했죠. 그런 면에서 ‘리틀 드러머 걸’의 미술감독(마리아 듀코빅)은 나이로 보나 성장배경으로 보나 정확한 기억을 갖고 있어요.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엄마는 체코, 아빠는 유고 출신이어서 중서부 유럽을 잘 알고 있더라고요. 여행도 많이 해서 로케이션 담당자가 레바논 사진을 주면 레바논은 이렇게 안 생겼다고 말할 수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단순히 고증에 입각해서 그럴듯함만을 추구한 건 아니에요. 극 중 찰리(플로렌스 퓨)는 아주 활력 있고 용기 있는 인물이고 직업이 배우이기 때문에 호기심 많아요. 그런 캐릭터에 걸맞는 비비드한 색을 많이 쓰려고 했죠. 당시 소품들을 봐도 그땐 대담한 색을 많이 썼더라고요. 모든 산업 디자인이 지금보다 훨씬 우월하게 아름다웠던 시기예요. 자동차만 봐도 지금 다니는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죠. 그런 걸 많이 보여주려고 했고 드라마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줬어요. 건축은 대조적으로 콘크리트 덩어리로 이뤄진 건축양식을 많이 썼어요. 삭막하고 황량한 건물 앞에 서 있는 인물들은 아주 화려하고 패턴 없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죠.”


Q.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에서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요.

“1회에서 쿠르츠(마이클 섀넌)가 알렉시스 박사에게 할릴 형제의 역사를 넓은 방에서 설명하는 장면이 길게 나와요. 방송판에선 없어진 장면이죠. 제가 유독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누구는 A를 이용해서 기관총을 쏘고, 누구는 집을 알아내서 포격해 가루로 만들어버린다는 설명을 해요. 너무 끔찍한 얘기잖아요. 그걸 굉장히 담담하게 얘기하죠. 기자들끼리도 ‘그 인터뷰 안 해주는 사람?’ 하면서 그냥 일상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것처럼 누군가를 박살내고 죽인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직업인의 세계인 거예요. 그런 직업에 몸담고 몰두하다 보면 생명의 가치가 무감각해지고 죽인 얘기를 하게 되잖아요. 그런 디테일이 좋았어요. 좋아하는 다른 여러 장면이 있지만 방송판과 비교해서 볼 때 두드러지게 차이가 느껴지는 장면이에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왓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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