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고민 없이 선택했다. 세상에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 ‘어린 의뢰인’(감독 장규성)에서 아이를 학대하는 지숙 역을 맡아 서늘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 유선은 이 영화를 통해 아동학대에 무심한 어른들이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유선은 어느 순간부터 주제의식이 있는 영화에 눈이 간다고 말했다. 자신이 맡을 역할의 비중이나 성격보다, 작품이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유선은 아이를 낳고 나서 이러한 기준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아이가 자라서 보기에 좋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설명이다.
‘어린 의뢰인’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아동학대에 대한 방관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선명하게 다룬다. 더불어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변화한다면, 조금은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제가 맡게 될 역할보다,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중요시하게 됐어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 보다, 주제를 한 줄로 축약할 수 있는 영화에 눈이 가요. ‘어린 의뢰인’의 주제는 사랑의 중요성이죠. 부모의 사랑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과연 나는 어떤 부모인가’를 잠시라도 생각한다면 주제가 잘 전달된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영화이지만, 깨우쳐야 하는 것은 어른들이니까요.”
2017년 아동학대예방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유선은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어린 의뢰인’에 참여했다.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아동학대에 대한 충격적인 현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후,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이유도 있다.
“폭언과 방치, 정서적 폭력… 타인이 아닌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여러 현실을 마주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됐죠. 그래서 저희 영화는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아동학대 문제의 심각함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수 없거든요. 가슴 아프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우리가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작품을 선택했지만 준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유선 ‘어린 의뢰인’ 촬영을 “홀로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 “외로운 싸움” 등에 비유했다.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흘린 것에 관해 “당시 취재진의 질문 중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연기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는 말이 제 마음을 알아주신 것 같았다”고 귀띔했다.
“아이를 낳고 인상이 많이 변했어요. 예전엔 눈빛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눈이 선하다는 말을 들어요. 작은 일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요. 작품은 큰 고민 없이 선택했지만, 막상 연기하려니까 걱정이 됐어요. 이 영화가 가진 목적을 위해서 제 역할은 정말 세게 표현되어야 하는데, 제 정서와 인상이 예전과 너무 달라져서 그런 느낌을 낼 수 있을지 처음엔 두려웠어요. 이 역할로 내가 어떻게 보일지보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가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죠. 그런데 영화를 보신 분들이 쉽지 않았던 과정을 많이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 감사해요.”
어려운 과제를 잘 마무리한 유선은 지금껏 해왔던 대로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나의 이미지에 안주하기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로 시청자와 관객을 만나겠다는 포부다.
“다른 것에 끌려요. 잘할 수 있는 것보다, 제가 하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 역할을 선택하는 편이죠. 예전엔 계속 다른 역할에 도전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18년 정도 연기를 하니까, 많은 분들이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라고 인식해주시는 것 같아요. 제 목표는 어떤 캐릭터라도 잘 해낼 것 같은 배우예요. 앞으로도 그런 도전은 계속되겠죠.”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