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이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이 비즈니스 혁신에 나서고 있다. 특히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5G의 상용화로 모바일에서 스마트홈, 자동차 등으로 플랫폼도 확장 중이다.
이러한 데이터 시대에 항상 제기되는 것이 개인정보 보안이다. IT업계가 최근 집중 투자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이나 클라우드 분야는 사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보보안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사용자들의 데이터로 운영되는 IT기업들은 사용자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면 글로벌 기업일지라도 존재가 휘청이게 된다.
대표적 사례가 페이스북이다. 월간 활성자 수만 23억 명에 가까운 이 기업은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전례없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선도적 이미지의 대표주자였던 페이스북은 지난해 초 사용자 정보가 미국 대선에 사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상 초유의 데이터 유용 논란을 겪었고, 이어 같은해 10월에는 전세계 이용자 약 30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해킹 사건까지 발생했다. 당시 ‘페이스북 쇼크’에 미국 증시는 휘청됐고 결국 최근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ESG지수에서도 퇴출당했다.
지난 13일 CNBC에 따르면 리드 스테드먼 S&P의 ESG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페이스북이 ESG지수에서 퇴출된 배경에 대해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노력과 회사 위기관리의 효율성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조성됐다”면서 “이런 이슈들이 ESG측면에서 페이스북을 다른 경쟁 기업들보다 뒤처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는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알려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딜리트페이스북(#DeleteFacebook)이라고 불리는 보이콧 운동까지 벌어졌다.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2018년 정보보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결과 개인이 정보보호 위협 중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분야는 '개개인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88.9%)로 악성코드 감염(86.8%)이나 피싱 등 금전적 피해(86.2%)보다 높았다.
■애플·구글·페북 등 글로벌 IT공룡들 일제히 개발자회의서 '프라이버시 보호' 강조
‘데이터 주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IT공룡들은 어느 때보다도 ‘프라이버시’와 ‘보안’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애플(WWDC), 구글 I/O(구글), F8(페이스북), 빌드(MS) 등 IT회사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개발자회의에서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지난해까지 이들은 신산업 흐름에 맞춰 맞춤형 광고나 AI비서, 가상현실(VR) 기술 등 고도화된 신기술을 설명하는데 열을 올렸다.
반면 올해 개발자회의가 다른때보다 비교적 잠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CEO는 일제히 회사의 큰 방향을 ‘프라이버시 보호’라고 외치고 있다.
6월 초 열린 애플 개발자회의(WWDC 2019) 행사에서 주목받았던 기술 중 하나는 싱글사인온(SSO) 시스템인 ‘애플 ID로 로그인(Sign in with Apple)'이다.
‘페이스북으로 로그인’이나 ‘구글ID로 로그인’ 등 ‘공개인증’ 기술이 도입된 후 사용자들이 특정 사이트에 쉽게 가입할 수 있게 됐지만 관리가 취약한 서비스의 경우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이용되거나 계정을 탈취 당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또한 페이스북과 구글은 이 기술을 통해 이용자들의 위치정보, 소셜관계, 관심사같은 데이터를 수집해 광고 시장을 장악해왔다.
하지만 애플 SSO는 애플에 제공하는 최소한의 데이터와 애플 내부에 수집된 모든 데이터를 격리시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데이터 수집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한다. 앱을 더 이상 사용하기 싫어졌을 때 아무런 부담 없이 지우거나 비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에선 “애플ID 로그인은 아이폰 사용자들의 구글이나 페이스북 서비스 사용을 축소시켜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전 세계 사람들과의 만남과 소통을 주도하며 ‘광장’을 만들었던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스캔들로 후폭풍을 겪은 후 프라이버시에 초점을 맞춘 개인 소셜 플랫폼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F8행사에서 “미래는 프라이빗(Private)하다. 이것이 우리 서비스의 다음 단원”이라며 “우리에게는 '디지털 거실(digital livingroom)'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은 개인의 사적인 메시지, 소규모 그룹과의 소통과 더불어 게시물이 영구적으로 보관되지 않고,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는 단순한 결제수단 등을 제공하며 사생활을 보장하는 소셜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선다 피차이 구글 CEO도 기조연설에서 강력한 개인정보 정책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피차이 CEO는 “보안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개인정보라고 할 수 없다”며 “구글에서는 사용자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사람 대신 전화를 걸어주는 AI기술 ‘듀플렉스’를 발표하며 환호를 받았던 구글은 올해 개인정보 보호 강화 기술을 소개하는데 집중했다. 구글은 사용자가 지도를 통해 검색하거나 방문한 장소 기록을 구글에 저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인코그니토 모드’를 공개했다. 또 구글 어시스턴트의 기능 상당부분을 클라우드 연결없이 온디바이스(On-Device)로 처리해 클라우드로 저장되는 개인정보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도 일부분 해소했다.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이용자들에게 몇 개월마다 비밀번호를 바꾸게 하고 그 비밀번호도 대문자나 특수문자를 섞어서 만들라는 것도 개인정보를 강화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복잡해질수록 이용률도 떨어질 수 있다”며 “최근의 흐름은 이용자들이 번거로움을 겪지 않도록 IT기술 자체를 발전시켜 보안을 강화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안나 기자 la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