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0년 8월, 입대하는 친구를 배웅하겠다며 부산 수영 비행장을 찾았던 고(故) 박두근씨. 18살이던 그는 그 자리에서 친구와 함께 징집됐다. 이후 치열한 전투 끝에 숨을 거뒀다. 고 박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고 박씨의 남동생 순근씨는 형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지난 2012년 숨졌다. 고 박씨의 유해는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지난 2000년 유해발굴 사업 추진 이후, 6·25 전사자 1만여위의 유해가 전국 곳곳에서 수습됐다. 그러나 신원확인을 마치고 가족을 찾은 사례는 극소수다.
24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미수습 6·25 전사자는 13만3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만1579위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 1만237위는 국군 전사자다. 신원이 확인된 이는 단 132명뿐이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전사자는 왜 이리 적을까. 우선 유해 발굴이 더디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발굴된 유해는 미수습 6·25 전사자의 약 7.7% 수준이다. 유해발굴은 시간·기억과의 싸움이다. 전국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진 탓에 전사 장소를 특정하기 어렵다. 함께 전투에 임했던 동료들의 증언이 절실하지만 고령으로 인해 다수는 세상을 떠났다. 국토 개발로 인해 전장은 69년 전과 판이해졌다.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할 유전자(DNA) 정보가 부족한 탓도 있다. 유해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 한 DNA 감식을 통해 가족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전사자의 친·외가 8촌까지 DNA 등록이 가능하다. 그러나 등록을 마친 유가족은 지난 2월 기준 4만4952명에 그쳤다. 전체 미수습자의 26%다.
DNA를 등록한 유가족에게는 긴 기다림이 뒷따른다. 고 박씨의 장조카 박일현(52)씨는 지난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DNA를 등록했다. “형의 유해를 수습해 고향에 묻어달라”는 아버지 순근씨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다. 아버지의 DNA가 이미 등록돼 있지만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본인의 것도 등록했다. 박씨는 “최근 큰아버지가 전사한 곳으로 추정되는 경북 포항 형산강 지역에서 유해발굴이 진행 중”이라며 “하루빨리 유해를 수습할 수 있기만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해발굴감식단 측은 전사자 유해발굴을 위해 국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격전지 인근 주민들의 제보가 유해 발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사소한 제보도 소중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건소와 군 병원 등에서 간단하게 DNA 등록을 할 수 있다”며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