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의 과거사 관련 만화가 이현세 작가에게 고개를 숙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취임식에서 ‘검찰의 반성하지 않는 자세’를 꼬집었던 만큼 꾸준히 ‘사과 행보’를 이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문 총장은 지난 2017년 취임 직후 이 작가를 찾아가 사과했다. 지난 1997년 검찰은 이 작가의 작품 ‘천국의 신화’를 문제 삼아 음란폭력물제작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당시 학교 폭력 문제를 만화계의 탓으로 돌리기 위한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 작가는 지난 2003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정을 확정받았다.
문 총장은 검찰의 과오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첫 검찰총장으로 꼽힌다. 그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지난달 25일에도 과거 검찰의 부실수사와 인권 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그는 “과거사위 조사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큰 고통을 당하신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의 인권이 유린된 사건의 실체가 축소·은폐되거나 가혹 행위에 따른 허위자백, 조작된 증거를 제때 걸러내지 못해 국민 기본권 보호의 책무를 소홀히 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작가의 사례처럼 직접 피해자와 유가족 등을 만난 사례도 다수 있다. 문 총장은 지난해 3월에는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를 만나 직접 사과했다. 고 박 열사는 지난 87년 수사당국의 고문으로 인해 숨졌다. 문 총장은 고 박 열사의 부친인 고(故) 박정기씨가 있는 부산 수영구의 요양병원을 찾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너무 늦게 찾아뵙고 사과 말씀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고 박씨는 문 총장의 사과를 받은 후 4개월여 뒤에 숨을 거뒀다.
같은 해 11월에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했다. 문 총장은 사과문을 읽으며 말을 잇지 못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형제복지원은 지난 75년부터 87년까지 부산 사상구에서 사회복지법인 형태로 운영된 곳이다. 부랑자를 선도한다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에 근거해 시민 3000여명 이상이 감금돼 강제 노역을 당했다. 구타와 성폭력 등 학대도 빈번했다.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한다. 그러나 당시 검찰이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조기 종결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17일에는 전국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생활공동체인 ‘한울삶’을 찾아 사과했다. 한울삶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숨진 시민과 학생, 노동자, 군인 등의 유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던 문 총장의 임기는 오는 24일 종료된다. 문 총장의 후임으로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내정됐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