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를 리메이크한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원작 설정에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잘 녹여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시작 전 호기심과 우려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던 작품이지만, 끝날 때쯤엔 ‘인생 드라마’라는 호평이 따라붙었다.
배우 지진희는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박무진 역을 맡아 원작과 또 다른 맛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테러로 국정 전반을 잃고 갑작스럽게 국가의 책임자 자리에 앉게 되는 박무진의 고뇌와 정치적 성장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덕분이다.
드라마 종영 후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지진희는 ‘60일, 지정생존자’가 기존 정치 드라마의 틀을 깼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주인공이 테러 후 바로 대통령 자리에 앉는 원작과 달리, 권한대행 직무를 수행하는 등 현실에 맞게 각색한 대본도 완성도를 높이는 것에 한몫했고,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합도 좋았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국정을 운영하게 된 박무진은 기존 정치인들이 봤을 땐 너무나 이상한 선택과 판단을 하죠. 자신의 의지나 정치적 카리스마가 아닌 오로지 과학적 데이터와 법을 이용해서 돌파구를 찾는 박무진이 처음엔 다소 답답해 보이기도 해요. 이런 상황을 주변 인물들이 채워줘야 하는데, 함께 한 배우들이 그 역할을 잘해줘서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박무진의 매력이 잘 보일 수 있었어요.”
드라마 속에서 박무진을 돋보이게 한 것은 주변 인물이지만, 작품 밖에서 함께 하는 후배 배우들에게 자유로운 연기의 장을 열어준 것은 지진희다. 좋은 리더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평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답한 그는 ‘60일, 지정생존자’ 현장을 수직이 아닌 수평적 구조로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이런 위치가 되면 이런 현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모든 배우가 스스로 빛날 수 있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배우들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라’고 말했어요. 허준호 선배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해주셨고요. 모든 걸 펼칠 수 있는 장을 열어 놓으니, 배우들이 스스로 준비를 철저히 해오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즐거움이 생기니 책임감도 자연스레 뒤따랐던 것 같아요.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제게 조금 더 특별해요.”
지난 1999년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지진희에게 연기자로 지낸 약 20년간의 소회를 묻자 “특별한 것은 없다”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다만 그는 낯선 상황에 툭 던져진 박무진의 모습에서 비슷하게 연기를 시작했던 신인 시절의 자신을 엿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를 시작하면서 절대 뒷걸음은 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바닥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출발해서 한 걸음씩 전진했고 처음 목표했던 바는 이루고 있네요. 지금도 어느 하나를 정답이라고 여기지 않고, 늘 정답을 찾으려고 해요. 그런 과정이 쌓여서 앞으로 또 한 걸음씩 나아갈 거예요. 그래서 연기 생활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이 가장 훌륭할 것이란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