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영화 ‘럭키’(감독 이계벽)의 깜짝 흥행은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배우 유해진 원톱 주연의 코미디 영화로 7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는 것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스타 배우나 스타 감독의 작품도 아니었고 관객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일본 영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그렇게 입소문을 타며 성공할 거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최근 다수의 코미디 영화가 제작되며 국내 영화 장르의 폭을 넓힌 이면엔 ‘럭키’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럭키’로 이름을 알린 이계벽 감독은 다시 추석 시즌에 코미디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그의 신작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유해진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차승원 원톱 영화로 ‘럭키’의 변주일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후천적 지적 장애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진지한 소재를 매력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계벽 감독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설명했다.
“시나리오는 영화 ‘올드보이’(감독 박찬욱)에서 같이 조감독을 했던 한장혁 감독이 쓴 시나리오였어요. 그 내용도 알고 오랜 기간 돌았던 작품이라 십수 년이 지난 다음 다시 읽으니 ‘왜 이렇게 많이 바뀐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구 지하철 참사가 툭 들어간 게 의아했어요. 왜 이 이야기가 있는 건가 싶고 만들어도 되는 건가 고민도 했죠. 이 사건을 가볍게 표현하면 이상할 것 같아서 조사를 하고 관계자들을 만나 뵀어요. 대구에서 당시 사건 관계자 분들을 뵙고 이런 얘기를 해도 되냐고 여쭤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랬더니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게 너무 고맙다며 잊혀지는 게 슬프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보는 시점이 많이 달라졌어요. 더 적극적으로 사건을 얘기하고 관계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지난달 29일 열린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언론 시사회는 반전의 현장이었다. 웃음 가득한 분위기일 거란 예상과 달리 막이 올라간 후에도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후반부 드라마가 강렬하다. 이계벽 감독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위로에 관한 이야기라서 전 담담하게 그린 건데 그렇게 많이 우실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약간 당혹스럽더라고요. 그분들을 불쌍하게 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들이 굉장히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관객들이 사고 이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이야기 구조로 만들었어요. 의도적으로 슬프게 하지 말고 담담히 지켜보는 느낌으로 진행했는데, 관객들이 앞부분에서 웃으셨던 걸 잊으시는 것 같아요. 또 코미디가 너무 들뜨면 그분들을 희화화한다는 얘기를 들을 것 같아서 코미디의 톤을 많이 조절하기도 했습니다.”
이계벽 감독은 ‘럭키’와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두 영화의 코미디가 많이 닮아있다고 설명했다.
“전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코미디 톤이나 방향이 럭키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상황 중심의 코미디고 그 상황이 꼬여가는 얘기기 때문이죠. 하지만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코미디만으로 영화의 결말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이들의 이유를 밝히는 것이 훨씬 중요했어요. 저 인물이 왜 저렇게 하지, 딸은 왜 헤어졌을까 생각이 드는 장면들의 원인을 나중에 밝혀내는 이야기에 집중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이계벽 감독이 관객의 반응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혹시라도 영화의 의도와 다르게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동시에, 전하는 메시지가 잘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보면서 내가 갖고 있던 시선이 바뀌는 거예요. 전 참 좋거든요.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런 과정을 겪어요. 그게 정말 큰 매력이죠. ‘힘을 내요, 미스터 리’를 보시고 관객분들이 주변에 이렇게 상처받고 고통받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