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작품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허성태가 또 하나의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얼마 전 종영한 OCN 드라마 ‘왓쳐’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삶이 무너진 남녀 세 명이 경찰 내부 비리조사팀이 돼 권력의 실체를 파헤친 심리 스릴러다. 이 드라마에서 세양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반장 장해룡 역을 맡은 허성태는 특유의 섬세한 연기로 작품이 호평을 얻는 것에 일조했다.
하지만 얼마 전 서울 도산대로 한 카페에서 만난 허성태는 ‘왓쳐’의 장해룡이 쉽지 않은 상대였다고 털어놨다. “고민으로 시작해 고민으로 끝났다”라는 부연에서 작품에 임했을 당시 그가 느낀 고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역할과 연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건, 그가 자신의 의지를 담아 선택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왓쳐’의 대본을 접하고 선과 악의 교집합이 담긴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은 허성태는 제작진에게 장해룡을 연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장해룡이 악인으로 출발하지만, 후반부엔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안길호 PD님께 여쭤보니 ‘글쎄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촬영 중반부까지 장해룡이 김영군(서강준)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이렇게 결론을 모르고 연기한 건 처음이었죠. 그래서 고민이 더 깊었던 것 같아요.”
최종회를 보면서도 ‘맞는 연기를 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러한 안길호 PD의 연출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엔 도움이 됐다. 허성태는 “중후반부까지 시청자가 혼란스러워하는 반응을 보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범인을 모른 채 범인 연기를 했기 때문일까. 허성태는 “장해룡을 연기하고 의심이 늘었다”며 웃었다. 좋은 말을 들어도 의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표에 따라 변화했던 ‘왓쳐’의 인물들을 언급하며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치광(한석규)의 대사 중 ‘나는 한 번도 정의를 위해서 일해본 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있어요. 인간사엔 선과 악, 옳고 그름이 얽혀 있다는 의미가 담겼죠. 극 중에서 선의 편이라고 믿었던 도치광도 나쁜 짓을 했잖아요. 절대적인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선과 악의 경계, 혼란 속에서 걸어 나온 허성태는 이제 다른 페이지를 쓰기 위해 나선다. 그간 주로 연기했던 악역의 이미지를 벗고 웃음기 있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다. 허성태의 또 다른 도전인 셈이다.
“드라마를 함께한 한석규 선배, 영화를 같이 촬영하고 있는 권상우 선배가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조언을 해줬어요. 이제 다른 걸 해봐야 한다고요. 운이 좋게 다음 작품인 ‘싸이코패스 다이어리’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겐 기회고 도전이죠.”
허성태에게 목표를 묻자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했던 경험이 묻어 나오는 답을 했다. 사업계획표를 작성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연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언제쯤 주인공을 하고, 어떤 성격의 역을 맡고 그런 계획 없이 하다 보면 언젠간 그 자리에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캐릭터를 마무리하는 선에서 올해를 마무리하고 싶어요. 배우로서의 목표요? 그냥 사람 냄새 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