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김명민 “'장사리', 가장 가깝고 가장 위대한 역사”

[쿠키인터뷰] 김명민 “'장사리', 가장 가깝고 가장 위대한 역사”

김명민 “'장사리', 가장 가깝고 가장 위대한 역사”

기사승인 2019-09-24 05:00:00


“처음엔 상상이 정말 안 갔어요. 그러다 우리 애를 생각하니까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쟤가 전쟁에 나갔던 거야? 와, 말도 안 돼’ 하고요.”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명민은 올해 중학교 3학년이라는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학도병 이야기를 그린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던 이유다. 현장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학도병 역할의 보조출연자들은 나이가 어렸다. 앳된 얼굴의 배우들이 촬영 도중 손이 찢어지거나 피가 나는 모습을 보며 ‘학도병들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장사상륙작전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장사리’는 영화 ‘물괴’의 제작사가 준비하고 있던 작품이에요. 한쪽에서는 ‘물괴’를 찍고, 다른 한쪽에서는 ‘장사리’를 기획하고 있었죠. 그래서 이미 잘 알고 있던 작품이에요. 1년 정도 지난 후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란 새 제목으로 촬영에 들어간다며 리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왔어요. 새로 내정된 곽경택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학도병도 아니고 분량도 적지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막상 이명흠 대위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려니 자신이 없었어요. 역사적 사료도, 알려진 바도 없었거든요. 캐릭터 분석에 난항을 겪었죠.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사명감과 책임감이 훅 들어오는 순간이 있었어요. 배우가 감당할 몫인 건 알지만, 굉장히 부담이 됐습니다.”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역사 왜곡 문제에 민감하다. ‘장사리’ 역시 처음부터 최대한 역사를 왜곡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장사상륙작전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이야기적인 재미보다 사실성과 진정성에 집중하려고 했다.


“솔직히 단순한 영화예요. 보여줄 건 세 가지가 전부예요. 상륙작전과 보급로 차단, 마지막 퇴각. 이 세 가지 사이에 학도병 이야기를 집어넣었어요. 처음부터 감독님이 모든 스태프에게 이 사실을 제대로 인지시켜주셨어요. 우리 영화는 장사상륙작전을 모티브로 철저하게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영화라고요.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요소도 없고, 촬영기법이나 특수장비로 화려하게 연출하는 것도 없어요. 감독님께선 처음부터 ‘우리는 진정성으로 다가간다’고 주장하셨죠. 배우들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 이야기가 그대로 묻히거나 알려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열의를 갖고 참여했어요.”

김명민은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역사적 사료를 조사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몇 줄이 전부였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이라는 설명과 5000분의 1의 희박한 가능성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왜 골잡이는 기억하고 어시스트한 사람들은 왜 기억되지 못하는 걸까 하며 아쉬워했다. 유가족들을 만나며 국민으로서 이 사건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우로서도 의미가 깊게 남을 영화다.

“장사상륙작전은 비극적이고 기억해야 할 역사예요.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버틴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잖아요. 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위대한 역사도 많지만 가장 가까운 현대사의 위대한 역사를 모르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유가족 분들을 만나 뵀을 때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얘기를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배우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로서 역할이 그런 것이라면, 앞으로도 좀 더 돌려드리고 싶어요. 나 하나의 입지와 행복이나 입신양명도 좋지만, 관객들에게 돌려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나중에 눈을 감을 때 뿌듯할 것 같아요. 제가 배우로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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