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나는 미국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연설을 읽었다. 2004년 7월 당시 대선에 출마한 존 케리 상원 의원을 지명하는 자리에서 그가 한 기조연설이다. 이렇게 시작한다. "미국의 중심이자 링컨의 땅인 위대한 일리노이 주(州)를 대신하여 제가 여러분에게 이처럼 중요한 모임에서 연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아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제에게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제가 이 연단에 서 있다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는 케냐의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외국 학생입니다. 그는 염소를 치면서 성장했고 양철 판 지붕으로 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의 아버지, 저의 할아버지는 가정부 요리사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미국은 하나'라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시카고 남부에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닐지라도, 그 사실은 저에게 중요합니다. 만일 어딘 가에 약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노인이 의료비와 월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녀가 내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내 삶마저 가난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변호사 선임을 못한 채 혹은 정당한 법적인 절차 없이 체포 당 했다면, 그것은 나의 시민권 침해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근본적인 믿음입니다. 나는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나는 내 여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나는 내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다." 이 문장이 감동이다. 성경에 나오는 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에덴동산에서 나와, 에덴의 동쪽에 자리를 잡고, 아담과 이브는 카인과 아벨을 낳는다. 그 후에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숨어 있을 때, 신은 "네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창세기> 4:9)고 묻는다. 그러자 카인은 "나는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오히려 신에게 되묻는다.
오바마는 카인의 되묻는 질문에 "나는 내 동생, 내 이웃, 동료 인간을 지키는 자입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에덴의 동쪽에 거주하기 시작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 존재의 위상뿐만 아니라, 내 주위 사람, 그것이 동생이던 친구이던, 이웃이던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카인은 퉁명스럽게 "저는 모릅니다.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인간이란 자신만, 자신의 가족만 지키는 자에서, 내 주위 사람, 아니 내 행동 반경을 넓혀 우리 사회, 심지어는 먼 곳의 이름 모를 사람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정치인은 권모술수로 인기에 영합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 관심의 영역을 넓혀,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까지 내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의 소유자였으면 한다. 나부터 반성한다. 지나보면 순간을 사는 우리들인데. 배철현 선생의 묵상을 읽으며, '우리는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밤이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배철현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아담’이라고 했다. ‘아담’은 원래 ‘붉은 흙’이란 의미를 가진 ‘아다마’에서 유래했다. ‘붉은 흙’은 지중해 지역의 전형적인 흙 형태로 ‘테라 로사(terra rossa)’라고 불린다. 인간은 사실 본질적으로 흙이다. 인간은 원래 흙이었고 잠시 숨이 붙어있는 동안 지상에 살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이기에, 고대 히브리인들은 인간을 ‘붉은 흙’, 즉 ‘아담’이라 불렀다. 로마인도 유사하게 인간을 흙으로 보았다. 라틴어 ‘호모(homo)’는 ‘흙’이란 의미를 지닌 ‘후무스(humus)’에서 왔다. 인간의 유한함을 드러내는 단어로 ‘인문학’ 이라는 단어 ‘휴매너티즈(humanities)’도 같은 어원을 지닌 파생어이다."
인문운동가가 보는 인문학은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무한함을 지향하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왔던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 사실과 진리를 깨달은 인간은, 한정된 시간에 자신의 최선을 발휘되는 전략을 짠다. 유한함에 대한 아쉬움이 인문-과학-예술이 된다. 인간은 자신이 아닌 타자들, 타인과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 ‘문화(文化)’를 구축하였고, 그 문화를 가시적인 성과로 표현한 것이 ‘문명(文明)’이다. 월요일에 <인문학과 인문정신>이란 특강이 있어 여러 생각들을 정리하다 만난 문장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자신이 하는 일에 자존심과 그 일을 이루는 과정에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채 얻은 돈이나 성공이나 권력은 다 헛된 것이다. 정리가 되는 아침이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문정희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
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
아무 의미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
나의 운명과는 상관도 없지만
별을 나는 좋아한다.
별이라고 말하며 흔들린다 아무래도
나는 사물보다 말을 더 좋아하는가 보다.
혼자 차를 마시면서도
차를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고
여행보다 여행 떠나고 싶다는 말을
정작 연애보다는
사랑한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어쩌면 별도 사막일지 몰라
결국 지상에는 없는 불타는 지점
하지만 나는 별을 좋아한다.
나의 조국은 별 같은 말들이 모여서 세운
시의 나라
나를 키운 고향은 책인지도 몰라.
박한표(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경희대 겸임교수)